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특별시/강남 (문단 편집) == 강남의 내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youtube(KPVseOsTu70)]}}}|| || '''강남의 역사''' || 본디 이 지역은 서울 도심부 바로 아래쪽에 위치해있다는 점만 빼면 초가집이 즐비하게 늘어지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고, 백제 때는 도읍지로 나름대로 번화했다고는 하지만 서울 편입과 본격적인 개발 이전까지만 해도 천수백 년이 넘는 옛날 얘기였을 뿐이었다. 지금의 강서구, 구로구 일대의 미개발 농지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지금의 강남 지역은 저지대 늪지대라서 철도 계획조차 잡힌 적 없는 오지였던데다 언덕도 많았다.[* 논현동이나 대치동 등 언덕이 명칭의 유래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골목길에 경사가 있다.] 1950~60년대만 해도 강남은 강북주민들에게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던 농업지대였다. 서울의 규모가 팽창하면서 점차적으로 서울특별시로 편입된 곳인데[* 남북 분단이 아니었으면 서울 대확장 당시에 지금의 강남 대신에 지금의 광명, 부천, 시흥 북부, 부평 등이 서울로 편입되었을지도 모른다. 서울 대확장 당시만 해도 강남 지역은 개발 동력이 없던 깡촌 오브 깡촌이었고, 강남 개발의 주요 동기 중 하나는 안보적 고려였다.], 편입된 지역 중 나머지 지역들은 기존에 철도가 지나가던 자리였던 동시에 새로운 산업단지가 들어선 반면,[* 예로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서울특별시/영등포|영등포]]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1936년 경성부 편입) 이미 공업단지 및 주거지역이 들어선 상태였다.] 이 바닥은 철도나 산업단지 같은 것이 없고 논과 밭이 즐비하게 널려있었기 때문에 주거시설과 산업시설이 쉽게 들어설 수 있었다. 덕분에 ~~거기에 땅 있던~~ [[졸부]]들이 대거 양성되었다. 강남 개발은 대한민국 최초의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자 대한민국의 경제적 중심을 아예 옮겨버렸던 가장 성공한 신도시 개발이기도 하다. 도시계획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강남 편애 수준이 되어버린 것도, 그 당시 강남은 서울로 편입된지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서울로 편입된 게 1963년이다. [[노원구]](양주), [[강서구(서울특별시)|강서구]](김포) 등지도 이때 편입되었다.] '''깡촌'''이었던지라 서울시민들이 강남으로의 이주를 꺼렸기 때문이었다. [[1968년]] 부터 [[1970년]]까지 [[경부고속도로]](현 [[경부간선도로]] 구간)이 순차적으로 개통되었고, [[1969년]] 12월 25일에 [[한남대교|제3한강교(現 한남대교)]]가 개통되고 나서 이 지역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또한 1972년 11월 26일 영동1로([[강남대로]])부터 영동6로([[영동대로]])까지의 종축 도로가 완공되었다. 이로 인해 강남이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70년대]] 이후 강남 각지에 주요 인프라와 고급 아파트 등 주거시설이 들어섰다. 박정희 정부는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사람들을 강남으로 보내기 위해 강북 지역의 여관 등 위락시설의 신규허가를 제한하고, 강남 토지 소유자에게 용도변경을 심히 제한하여 일반주택단지가 아닌 고급주택단지의 건설을 강요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의 [[논현동(강남구)|논현동]], [[청담동]], [[방배동]] 일대. 특히 이 때문에 강북에서 강남으로 가는 한남대교와 바로 맞닿아있는 [[신사동(강남구)|신사동]], [[압구정동]], 그리고 이와 가까운 논현동으로 강남의 유흥업이 빠르게 강남으로 옮겨가 이 지역은 유흥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등학교를 평준화시킨 후 경기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등 강북의 명문고교를 강제 이전시켜 명문고에 가려면 강남에 살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렇게 생긴게 [[강남 8학군]]과 [[대치동]] 학원가. 사실 이렇게 강남 편애적인 도시계획이 이루어진 데는 남북분단의 영향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강남 일대가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중에서는 그나마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가장 먼 곳이고, [[1970년대]]에는 정부가 강북(서울) 인구 분산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였기 때문. 남북분단이 아니었으면 1963년 서울 대확장 당시에 지금의 강남 대신 [[경인통합|인천권(경인선) 지역이 대신 서울로 편입]]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당시 산업단지나 슬럼 같은 주·상업 지구의 장애 요인이 거의 없는 마지막 땅이었고, 드넓은 벌판에 체계적인 도시 및 도로계획이 수립되어 도로망이 '''바둑판식'''(격자형)으로 매우 잘 정비되어 있다. 실제로 강남구는 2000년대 들어 미국처럼 Street과 Avenue의 개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주소체계를 만들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도로명주소]] 사업의 성공적 사례가 되었다. 이후 [[종로구]], [[중구(서울)|중구]] 등지에 있던 기업의 본사, 상점 등이 1990년대 후반부터 대거 이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이 지역의 가치가 급상승하게 되었다. 강남의 급속한 발전은 [[외환위기]]로 강북 지역에 본사를 뒀던 많은 재벌그룹이 쓰러진 자리를 IT [[벤처기업]]들이 [[테헤란로]] 주변에 모여서(속칭 테헤란 밸리) 같이 성장하면서 이끈 것이다. 강남이 지금처럼 서울의 3핵 중에서도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된 것이 바로 IT기업들의 공. 강남이 이렇게 발전해서 위상이 확립된 것은 [[2004년]] [[타워팰리스]] 3차 완공 이후이다. [[2016년]] 지금은 이 IT기업들은 [[판교테크노밸리]]를 비롯한 경기남부로 대거 빠지는 추세다. 또한 강남 테헤란 일대에 [[포스코]]그룹 본사[* [[포스코]]의 서류상 본사는 [[포항시]]지만 사실상의 본사 사옥은 [[선릉역]]-[[삼성역(도시철도)|삼성역]] 사이 포스코센터에 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서초사옥, [[NH농협은행]], [[미래에셋대우]]와 같은 [[금융]]그룹들의 강남본부, 한국[[지멘스]], [[구글]]코리아, [[페이스북]]코리아, [[Apple|애플]]코리아, [[이란]]의 멜라트은행 등 [[외국계 기업]] 등이 있다. 서울에서 [[경기남부]]로 인구와 일자리가 이동하는 추세임에도 강남은 경기남부에 가깝기 때문에 서울 내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는 편이다. 경기남부 신도시의 젊은층들이 경기남부가 아닌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우에 거리가 먼 강북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강남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울에서 경기남부로 출퇴근할때에도 강남이 경기남부에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서울의 인구가 급감하는 와중에도 서울 내에서 인구감소가 덜한 편이다. 그러나 그나마 서울 내에서 사정이 낫다는 강남도 학생층 인구의 감소 속도가 경기남부보다 빨라서 학원가나 학군지가 강남에서 젊은층이 많은 경기남부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ttps://www.google.co.kr/amp/s/amp.seoul.co.kr/seoul/20230130002006|#1]], [[https://www.google.co.kr/amp/s/www.donga.com/news/amp/all/20230316/118352400/1|#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