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병원 (문단 편집) === 광복 후 === [[광복]]이 되면서 [[경성제국대학]]이 해체되고, 경성대학으로 재설립되었다가 여러 전문학교와 합쳐져 [[서울대학교]]가 설립되면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은 현재의 서울대학교병원이 되었다. 식민지 시절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이 그랬던 것처럼 광복 이후에도 국가중심병원으로써의 기능을 물려받았다. [[6.25 전쟁]] 중 [[서울의대 부속병원 학살 사건|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1954~61년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대학교병원의 교수 226명이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로 단체 연수 프로그램을 시행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은 일본 전통에서 미국 전통으로 바뀌게 되었고[* 당시 조선말기, 일제강점기 미국식 의료는 선교병원을 통해서 도입되었다. 세브란스병원, 대구 동산병원(현 계명대 동산병원), 전주예수병원등이었다. 하지만 당시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성제대 부속병원등의 관립의료기관들은 대부분 일본식 의학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의 의료기구 원조 등을 통해서 병원의 의료 서비스 수준이 대폭 늘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있더라도 거의 기능을 하지 못했던 마이너 진료과들이 제대로된 트레이닝을 받은 인재들이 생김으로써 기능하게 되었고, 이후 한국이 그나마 의료서비스 측면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 또한 서울대병원이 이후 한국 의료의 패러다임을 수십년간 주도하게 된다. 1978년 현 본원 건물의 준공과 함께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에 의해 특수법인으로 발족했다. 1978년 당시에는 13층의 본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병원이었다. 1985년 어린이병원 개원, 1987년 서울특별시립 영등포병원([[보라매병원]]) 위탁운영, 2003년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강남건강진단센터가 개원하는 등 계속 병원은 확장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