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병원 (문단 편집) === 광복 전 === 1885년, 조선 정부가 세운 최초의 근대적 의료기관 [[제중원]]을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설립하여 미국인 [[선교사]]인 [[호러스 뉴턴 알렌]]이 서양식 의술을 시행했다.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미 북[[장로회]] 선교부에서 파견된 의사 선교사들이 계속 제중원에서 일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을미사변]], [[갑오개혁]]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제중원을 운영하던 올리버 에비슨,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등의 선교사들은 정부와 협상하여 병원 운영권을 가져갔다. 이로써 정부가 제중원의 운영에서 손떼게 되었고, 이후 제중원은 정부 지원금 대신 미 북장로회 선교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되었다. 1904년 제중원과 미 북장로회 선교부는 [[서울역]] 앞에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하여 기존 제중원 의료진이 모두 옮겨갔다. 1905년 남은 건물과 적십자병원 등이 현 위치인 [[창경궁]] 동쪽에 대한의원으로 통합 신설되었다. 위 전경사진의 앞쪽에 보이는 붉은 근대건축물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역시 제중원의 계승을 주장하는 [[세브란스병원]] 측과 마찰이 있는데, 한국 현대의학의 출발점이 어디인지가 달려있는 문제라서 상당히 다툼이 심하다. 그러나 양쪽의 주장을 모두 고려한 결과대로라면 제중원은 서울대병원보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세브란스병원의 원조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사실상 제중원을 계승한 병원은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편. 이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제중원 문서로.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16년 개교한 [[경성의학전문학교]]의 부속의원 역할을 하였으나,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설립되면서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개편되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는 1916년 개교 이래 사용해오던 임상 실습장에서 밀려난 셈이다. 그래서 1928년 11월 소격동 종친부 터(현 국립현대미술관)에 2층 건물로 부속의원을 지었다. 경성의전 부속의원은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이 되었다가, 국군수도통합병원을 거쳐서 현재는 위치를 이동해서 [[국군서울지구병원]]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식민지 보건의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당시 아직 미천한 수준에 불과하였던 한반도의 의료상황에서 전문적인 서양 기원의 의료기관이었던 서울대병원은 일제의 강력한 통치기구였다. 때문에 2007년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했을 때,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기념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