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 (문단 편집) === [[영어영문학과]] === Dept. of English Language and Literature ||1924||경성제국대학 예과 영어교과목|| ||1926||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 영어영문학전공|| ||1945||경성대학 법문학부 문학과 영어영문학전공|| ||1946||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영어영문학과|| ||1975||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과반 슬로건: 살아있다면? 움직이겠니! 영어영문/생동반 1924년 개교한 [[구제고등학교#s-3.3|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영어 강좌가 개설되어있었고[* 법문학부 문학/사학/철학과 진학반인 문과을류 기준으로 주당 수업시수가 영어 14시간, 독일어 10시간, 프랑스어 8시간이었다고 한다. 한국영어학학회의 논문 [[http://elsok.org/journals1_14/307|한국의 영어학: 그 과거와 미래]] 참조.] 담당교수는 아놀드 하워즈[* 이충우 저「경성제국대학」(1980)에 따르면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으로 영문학사를 가르치다 1935년 원래 있었던 인도의 대학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Reginald_Horace_Blyth|레지널드 블라이스]](Reginald Horace Blyth)[* 런던대학 출신으로 경성제대 예과교수로 있다가 일본인 처와 함께 1940년 오늘날 [[가나자와대학]]의 전신인 [[구제고등학교|제4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태평양전쟁 개전 후 적국민이 되면서 고베의 외국인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1945년 종전 후 일본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영문과 교수를 지내며 [[아키히토]] 천황(당시 황태자)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https://news.joins.com/article/1776334|링크]] 참조.] 등이었다. 1926년 법문학부 문학과에 영어영문학전공(강좌 주임교수 [[https://ja.wikipedia.org/wiki/佐藤清_(英文学者)|사토 기요시]](佐藤清))으로 출범하여 제1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5927|이종수]], [[이재학(1904)|이재학]] 그리고 제2회 [[이효석]], 제3회 [[최재서]], 제4회 [[조용만]] 등 많은 유명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광복 후 경성대학 법문학부 문학과 영어영문학전공,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를 거쳐 1975년 관악캠퍼스 종합화로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