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총학생회 (문단 편집) === 2000 (43대) : 광란의 10월(반권) [ [[허민(기업인)|허민]] / 강제욱 ] === 이 법칙이 깨진 건 2000년. 1999년 11월에 벌어진 2000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비운동권 계열의 '광란의 10월' 선본이 당선됨으로서 (총학생회장 [[허민(기업인)|허민]][* 현 [[키움 히어로즈]] 이사]) 서울대 최초로 비운동권[* 용어상 애매하긴 한데 서울대 내에서 자주 구분되는 비운동권-반운동권 구도로 본다면 반운동권 총학생회에 더 가까웠다.] 총학생회가 당선되게 된다.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아무튼 지금과는 달리 당시 정서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당선은 내외적으로 상당히 충격이었다.[*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허민 후보와 운동권 후보가 1:1 결선을 치루게 됐는데, 이 때 허민 후보와 대항하던 운동권 측에 반감을 가진 다른 운동권들이 허민 후보를 밀어줘서 당선됐다고 한다.] 다른 대학보다 반권총학생회의 등장이 몇년 늦은 편인데,[* 예컨대 연세대의 경우, 1990년대에 '94, '97, '99년에 걸쳐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있었다.] 온건한 성향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 운동권들의 경직성을 완화시킨 덕분이라는 의견, 서울대가 연대 등 타 대학에 비해 학생운동이 길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가능하다. '광란' 총학생회는 비권이라기 보다는 반운동권의 성향으로 대부분 학생정치조직 출신인 단과대 학생회장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어 총운위가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