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총학생회 (문단 편집) ==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연혁 == 사회지도층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라서 자괴감에 빠진 재학생들에게 기운을 주는 운동권 선배들의 명약이 있는 바, '열사가 제일 많은 학교'라고 말해주면 삶의 의지가 불타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군사정권 시기 학교 도서관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신림사거리에서 몸에 불을 붙여서, [[박종철|대공분실에서 고문당하다가]], 강제징집 당했다가 의문사로, 위장취업한 공장에서 산업재해등 많은 이들이 민주화의 제단에 바쳐졌다. 굳이 목숨을 바친 열사가 아니더라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서울대 학생들의 수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법과대학 한인섭 교수의 칼럼에 따르면 419혁명 이후 87년 민주화까지 약 30여 년 간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제명된 서울대 학생이 730명, 무기정학이 681명, 유기정학이 496명이었다고 하며 이것은 다른 대학들의 징계 전체를 합한 숫자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이것은 학생운동을 하다가 학교 측의 징계를 받은 학생들만의 수이며 학교를 떠나 노동운동 등에 투신한 사람들까지 합치면 더욱 많다. 이러한 서울대 학우들의 민주화에의 기여를 기리며 2009년, 정문 근처의 419 기념탑부터 시작하여 캠퍼스 내의 추모비 등 민주화 기념물들을 순회하는 '민주화의 길'을 조성한 바 있다. 열사를 많이 배출한 만큼, 한때는 전국 운동권의 각종 정파의 90퍼센트(대략 15개?)는 모여있을 만큼 학생운동이 강했다(대개의 다른 대학의 경우 1개 혹은 2-3개의 정파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도 2000년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이며, 2018년 현재는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단일 선본이 출마하며 총학과 단과대를 막론하고 운동권 학생회는 찾기 힘들다. 물론 이것은 서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운동권의 몰락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91년 소련 붕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했다면(역사 발전에 대한 믿음 붕괴 + 자본주의 세계 극복의 노력), 21세기는 1991년 소련붕괴(사회혁명 전망의 실종 + 세계 규모의 정치적 우경화)로 시작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96년 연세대 사태는 대학 내 운동권의 도덕적 헤게모니가 파산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97년 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의 장기불황과 대학의 취업학원화의 기점이 되었다. 대략 이러한 흐름에 따라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던 대학생 사회가 개인화, 보수화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서울대학교는 1992년에 전대협 6기 의장(태재준[* 해당 인물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 결성에 큰 영향을 끼쳤고,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사회복지학 석사도 따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주장하면서 나름대로 활동을 했지만, 고문후유증의 영향으로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폐인이 되어버렸고, 미국 유학중 한미양국 정부가 본인을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서울역에서 몇년째 1인시위 중이다. 다만 모든것이 본인이 주장하는 정황일 뿐 증거가 없다.])을 배출한 이후로 한총련의 NL 노선과 달리 PD 성향이 강했기에, 한총련과는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80년대 후반에는 서울대에서도 NL 노선이 강세였다. NL 노선이 처음 주도권을 잡은 대학이 서울대였을 정도. 그런데 서울대 NL 노선의 주류는 비주사파 경향이 강해 전국적인 NL 노선의 정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이를 관악자주파라 부른다.) 결국 이 주류 집단은 1993년에 뒤에 서술되는 '생대련'을 결성하고 이후 [[21세기 진보학생연합]]에 참여하면서 NL 노선을 사실상 포기했고, 이에 따라 서울대 내의 NL 정파 자체가 상당히 약화되었다.] 2006년 총학생회장 탄핵 사건의 간접적 계기가 된 한총련 탈퇴선언 당시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이 이를 찬미했지만, 실상은 한총련과의 관계가 이미 단절되어 있었던 것. 학생운동이 강했던 만큼 총학생회 역시 학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군사정권시절에는 총학생회가 없었으나, 민주화과정에서 학도호국단이 총학생회로 바뀌었다. 학도 호국단 이전의 총학생회를 포함하여 세기 때문에 2017년은 제59대 총학생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