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영춘 (문단 편집) == 사망 == 사적으로 [[주당|잦은 음주로 인하여]] 간(肝) 건강이 나빠졌고, 끝내 [[간암]]이 발병하며 긴 시간 병고(病苦)를 치렀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단체로 문병 온 후배 코미디언 중 [[최병서]]의 낯빛이 유독 어둡길래 서영춘이 "병서야, 요새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는데 최병서가 무심코 "네 선생님, 죽지 못해 삽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죽지 못해 사냐? 야 이놈아! 나는 살지 못해 죽게 생겼다!"'''며 일갈했고, 이 한마디에 병실에 있던 후배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꺽꺽댔다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는 최병서라고 했지만 이 일화를 얘기하는 사람마다 그 당사자가 다르다. [[이경규]]이기도 하고 [[심형래]]가 되기도 하고... 1990년대 [[웃으며 삽시다]]의 한 코너였던 개그실화극장 코미디천국에서 이 일화를 재연했다. 이 코너는 7~80년대 원로 개그맨들의 일대기를 후배 개그맨들이 재연한 코너였는데, 여기서는 서영춘과 [[이상해]] 사이에서 있었던 일화로 나왔으며 서영춘 역할은 [[최양락]]이 맡았고 이상해 역할은 최병서가 맡았다. 이 코너가 실화를 그대로 재연한 것이라면 실제 당사자도 이상해일 가능성이 높고, 당사자가 최병서라는 주장은 이 코너의 내용이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너 제목이 개그실화극장이라고는 해도 실화를 어느 정도 각색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결국 그 당사자만 아는 일일 듯. 결국 앞서 말했듯 그는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1986년 11월 1일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당초부터 배우를 지망하지 않았던지라 무대 체질이 아니었고, 공연 전 긴장을 풀 생각으로 늘 소주 반 병 정도를 마신 후 무대에 올랐는데 그게 지나치게 심해져 결국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고... 게다가 사적으로 구봉서와는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는데, 한때 주당으로 유명한 구봉서가 싫다는 서영춘을 억지로 술자리에 매번 데려갔다고 한다. 훗날 구봉서는 [[개신교]]에 귀의해 [[술]]과 [[담배]]를 모두 끊었고, 뒤늦게서야 서영춘의 음주 습관을 말리려 했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 때문에 구봉서는 이를 두고두고 애통해 하며 소싯적에 서영춘을 술자리에 끌고갔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한번은 구봉서가 서영춘의 건강을 걱정하며 술을 끊으라고 충고하자, 서영춘은 '''"형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유!!"'''라며 대들었고, 구봉서는 그 말에 너무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뒤돌아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참고로 서영춘이 사망한 다음날(1986년 11월 2일)은 구봉서의 [[환갑]] 날이었다. 구봉서는 이를 회고하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식들이 마련해준 환갑 잔치인데도 전날 영춘이가 죽는 바람에 도무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서영춘이 세상을 떠나고 영결식에서 후배 개그맨 [[엄영수|엄용수]]가 "살살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생전 국민들의 웃음과 즐거움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고, 대표적인 유행어로 '''요건 몰랐지 가갈갈갈, 붑빠라밥빠 붑빱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마십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이라는 내용의 고인 약력을 눈물을 삼키며 읽어 내려가는데, 정작 조문객들은 슬픈 분위기임에도 평소 서영춘의 우스꽝스러운 연기가 생각이 났는지 키득키득 거렸다고... 죽어서도 사람을 웃기는 뼈그맨의 숙명인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