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사트라프 (문단 편집) == 역사 == 본디 사카족은 스키타이의 일파로 [[월지|월지족]]에게 밀려 [[박트리아]] 지역으로 쫒겨났다. 그곳에는 여전히 [[인도-그리스 왕국|그리스 계열의 왕국]]들이 존재했으나 이들은 사카족들에 의해 멸망했다. 서기 1세기경 [[구자라트]], 말와 지역쪽에서 사카족의 일파인 크샤하라타 왕조가 왕국을 세우는데 이것이 서사트라프 왕국이다. 주변에는 비슷한 사카족들의 소왕국들이 존재했었고, 약간 북쪽 펀자브 지역쪽으로 존재했던 북사트라프 왕국과는 사이가 그닥 안좋았다. 그런데 이 북사트라프는 서북쪽에서 몰려온 [[쿠샨 왕조]]에 의해 멸망했다. 서사트라프는 이보다 훨씬 오래 존속했었고, 서북 지역에서 나름 강국으로 성장한다. 성장배경으로 서사트라프가 자리잡은 위치가 적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사트라프 왕국은 아라비아 해에 접해 있어 일찍부터 유럽과의 해상 무역이 발달했는데 이는 왕국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거기다 이 지역은 본래 [[인더스 문명]]이 일어난 지역으로 성장의 원천이 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중후반기에 서사트라프는 인도 중북부의 강자 [[사타바하나 왕조]]와 북쪽의 [[쿠샨 왕조]]와 경쟁하게 된다. 한때 그 위세가 매우 강력하여 [[쿠샨 왕조]]로부터 [[펀자브]] 일부 지방을, [[사타바하나 왕조]]로부터 [[구자라트]], 카타이와르, 말와, 베라르 지역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빼앗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인도 서북의 최강자로 떠오르도 했다. 그러나 4세기에 들어 내부 분란으로 세력이 많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당시 동쪽에서 크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굽타 왕조]]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어이 [[굽타 왕조]]의 찬드라굽타 2세가 서사트라프 왕국을 공격하게 되었고, 409년 서사트라프의 마지막 국왕 루드라싱하 3세가 살해당하게 된다. 결국 이로 인해 서사트라프 왕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분류:인도의 역사]] [[분류:아시아의 왕국]] [[분류:5세기 멸망]] [[분류:이란-인도 관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