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경덕 (문단 편집) == 생애 == 1489년 [[경기도]] [[개성부]]에서 아버지 수의부위(修義副尉) 서호번(徐好蕃)과 어머니 [[한(성씨)|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집안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13세에 처음으로 글을 읽었고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18세에 <[[대학(경전)|대학]]>을 읽고 격물치지에 뜻을 두었다고 하며 종달새 울음소리를 듣고 하루종일 이를 탐구했다는 일화도 있다. 1519년 현량과에 추천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개성 화담에 서재를 세우고 연구와 교육에 힘썼다. 이후 어머니의 요청으로 1531년([[중종(조선)|중종]] 26) 식년 [[생원|생원시]]에 응시하여 2등 7위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exm/exmView.aks?exmId=EXM_SA_6JOa_1531_002959|입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했다. 그의 호 화담은 그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한 곳의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후 1575년(선조 8) 우의정에 추증(追贈) 되었다. 그의 철학은 철저한 주기론이며 태허설(太虛說)이라고도 한다. 그는 기가 모이면 물질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태허가 된다고 보았다. 이 때 태허(太虛)라는 것은 기가 띄엄띄엄 흩어져 지각되지 않는 상태이며 소멸한 무(無)의 상태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지극히 현세 지향적인 성격을 띠며 그가 [[불교]]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것과 태허로 돌아가는 것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순행하는데 어떻게 뭉치고 흩어지느냐 하는 것이 바로 이(理)이다. 하지만 그가 이를 언급하는 것은 이 정도 수준에서 그칠 뿐이며, 그 이외의 부분은 대개 기에 대한 설명으로 전개된다. 종달새를 하루 종일 탐구했다든가 하는 일화들 또한 기를 탐구해 그 속에 숨은 이를 찾으려 하는 서경덕 철학을 잘 반영한 일화인 것이다.[* 이러한 서경덕 철학에 대해 [[원자설]], [[경험론]]과 유사하다는 평이 있으며 [[북한]]에서는 서경덕을 [[유물론]]의 시초로까지 끌어올린다. 당연히 [[사회주의]]적인 정치색이 섞여 있고 [[남한]]이 아닌 북한 출신이니만큼 띄워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러나 러시아과학아카데미에서 편찬하여 현재도 간행 중인 <세계철학사>에서도 서경덕의 기일원론 철학을 유교 계통의 유물론으로 분류하며 그 시초로 북송의 성리학자 장재를 꼽는 만큼 이와 같은 억측은 적당히 걸러봐야 한다. 이후 임성주, 최한기 등이 조선의 기철학을 계승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정작 [[성리학]]의 중심이 되는 이를 가볍게 여기고 때문에 성리학에서 제시한 방대한 이에 대한 설명을 그의 철학 체계 안에 넣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기의 순환을 통해 [[우주]]론을 설명했다 하더라도 이를 인륜에 적용시켜야 하는 유학의 기본 입장상 이가 단순히 [[자연]] 이치로 머문다면 이는 바람직한 철학이라고 볼 수 없었다.[* 사실 서경덕은 태허에서 [[하늘]]의 뜻(이)에 따라 실체가 이루어지므로 항상 고요한 마음을 가지라는 수양론을 제시했고 그가 평소에 중시하던 자연 [[과학]]적인 관찰 또한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정치 혼란과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철학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과 서경덕 철학은 어울리지 못했다.] 때문에 생전의 서경덕은 [[이황]]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이와 기를 포괄적으로 설명한 주기론자 [[이이(조선)|이이]]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조선 주기론은 이이 철학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마지막 순간에 제자가 "지금 심정은 어떠신지요?"라 물어보니 "살고 죽는 이치는 깨달은지 오래니 편안할 뿐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화담집(花潭集)』이 있으며, 그의 사상적인 면모를 밝혀 주는 「원이기(原理氣)」 · 「이기설(理氣說)」 · 「태허설」 ·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의 대표적인 글을 수록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