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투 (문단 편집) === 일본의 [[촌마게]] === || [[파일:external/pbs.twimg.com/CVLZ7vJUkAEZMq9.jpg]] || || 일본 남성 머리 모양 변천사 || 촌마게는 한국과 중국의 상투, 속발의 속성과 [[변발]]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원래는 일본도 촌마게도 상투나 속발과 큰 차이 없이 머리 위를 묶는 형태에 가까웠지만 전국 시대로 가면서 점차 윗머리를 미는 스타일이 유행하게 되면서 변발의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까지만 해도 머리를 길러서 뒤로 묶거나, 관을 썼을 경우 관 밖으로 삐져 나오는 머리카락을 밀어주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관을 쓸 때 그림에 나와있듯 머리를 막대 모양으로 모은 뒤 비녀로 뚫어 관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무사들의 경우 안그래도 일본의 더운 기후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열이 나는 마당에 늘상 투구를 쓰고 격한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머리를 밀 필요가 있었는데 상술한 관을 쓰는 방식 때문에 관을 쓸 때 필요한 머리카락은 남겨둬야 했다. 따라서 관을 고정시킬 뒷머리는 남겨두고 윗머리를 민 스타일이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촌마게]]의 기원이다. 이후 무사 정권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스타일은 일종의 지배 계층의 최신 스타일로써 서민들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에도 시대]] 쯤 되면 [[사무라이]]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촌마게를 하였다. 다만 에도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촌마게를 한 건 아니고 의사, 유학자, 수도승 등은 예전처럼 머리를 밀지 않고 길러서 뒤로 묶는 소하츠(総髪)라는 머리 모양을 했다. 사무라이 중에서도 경제 사정이 좋지 않거나 검소함을 신념으로 삼은 사무라이들은 촌마게를 하지 않고 소하츠를 했다. 촌마게는 머리를 정기적으로 밀어줘야 하므로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ka_11608012_002|중종실록 42권, 중종 16년 8월 12일 신묘 두 번째 기사]]에서는 '방망이 상투'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강제로 성년 남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법을 공표하였고, 성년남자들은 촌마게를 잘라내야했다. 현재는 사극배우나 스모선수같은 일부나 하는 수준. 일본 만화 등의 매체에서는 촌마게에 익숙해서인지 한국의 상투를 그릴 때도 [[똥머리|상투가 거의 뒤통수에]] 가까이 오도록 그리는 일이 잦다.[* [[만화 세계 옛날 이야기]]의 한국 이야기 "은혜갚은 꿩" 편이 한 예시.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075/read/11061013|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