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나라 (문단 편집) == 명칭 == || [[파일:은허-.png|width=70%]] || || 상나라의 주요 도시이자 수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허의 위치. || '은'(殷)[* 이는 사마천이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히는 사기를 쓸때 상나라 부분 제목을 "상본기"가 아니라 "은본기"라고 써버렸고, 사기 자체가 워낙 대단한 책이라 천여년간 중국 내에 널리 퍼지는 바람에, 후대에도 은나라라고 알려진 영향이 크다. 이는 후술될 내용대로 주나라때의 은이라는 표현의 유행을 한나라때도 이어받아서 그런데, 하지만 상나라가 공식명칭이라는 당대 유물 등의 역사적 물적 증거는 충분히 많고 은나라라는 증거는 없으므로, 은나라가 아니라 상나라가 맞는 건 틀림없다.]이라고도 불리기에 합칭하여 '은상'(殷商)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은은 반경(盤庚)부터 [[제신]](帝辛) 시기에 도읍했던 상나라 최후의 수도였는데, 당대에는 '의'(衣)[* 衣와 殷은 [[상고한어#s-2.2.1|상고한어]]에서 끝소리가[[r] 또는 [l]로 추정되며 나중에 이것이 [j]와 [n]으로 갈라진 듯 하다.] 혹은 '대읍 상'(大邑 商)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은을 도시 이름으로만 쓰고, 부족 이름은 '상'이라 하였다. [[갑골문]]에서도 은이라는 글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나라 이름이 은이라 불린 것은 [[주나라#s-2|주]]대 성립부터로, 초기에는 상과 혼용하다가 후에 은으로만 부르게 되었다. 이를 주나라 사람들이 부른 폄칭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서구인들도 Shang이라고 하며(은은 한어 병음 표기에 따라 Yin), 요즘 [[중국인]]들도 상이라고 부르는 추세다. 은나라라는 명칭은 은(오늘날의 은허)에 도읍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상이 부족명으로 쓰였기 때문에 은보다는 상나라라는 명칭이 중국고대사학계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인다. 다만 갑골문은 주로 은에서 나왔기 때문에 갑골학사에서는 은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이는 중동의 [[히타이트]]와 비슷하다. 히타이트도 네샤에서 하투샤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들 스스로는 계속 자기들을 네샤인이라 불렀으나 주변 국가들은 하투샤인이라는 뜻으로 하티라고 불렀다. [[상인]], [[상업]] 등의 '''商''' 자가 이 나라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상나라의 '''유민들이 [[행상인|이곳저곳 장사하며 떠돌아 다니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상추시]] 역시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 학계에서는 상나라를 건국하고 지배한 종족에 대해서 독립적인 표현을 쓸 때 상(商)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따 '''[[상족]](商族)'''이라고 칭하고 있다. 상나라는 제후국이었던 주나라 즉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신하였던 주나라의 [[역성혁명]]으로 막을 내렸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선왕은 맹자에게, 주나라가 상나라 주왕을 죽이며 상나라를 무너뜨린 것에 대하여 신하가 왕을 죽여도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맹자는 인의(仁義)를 잃어버리면 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一夫)일 뿐이므로 왕을 죽인 것이 아니라 일부(一夫)를 죽인 것이라며 역성혁명을 정당화하였다.] 화하족이 세운 [[주나라]] 입장에서는 이민족인 [[상족]](商族) 유민들을 안정시켜야 했으므로 무왕은 제신(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을 다시 은 지역에 봉해 제후로 삼았다. 하지만 [[무왕(주)|무왕]]이 죽은 후, 무경은 무왕의 동생인 관숙(管叔), 채숙(蔡叔), 곽숙(霍叔)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하고 만다. 관숙과 무경은 처형되고 채숙은 추방되었지만 [[상족]](商族)들과 이들에게 협력하는 [[동이]](東夷)들의 저항이 계속되었기에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기까지는 수 년이 더 걸렸다.[* 유의할 점은 선진시대의 東夷는 우리가 생각하던 고조선이 아닌 산동 반도 지역의 이민족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애당초 동쪽 오랑캐라는 표현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지칭 대상이 극히 유동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 점을 간과하고 비전공자나 재야사학계에서 선진 문헌의 기록을 고조선과 끊임없이 연관짓는데 유의해야 할 접근이다.] 난을 진압한 주나라는 자신들에게 협조적인 상의 왕족 [[미자계|미자 계]]를 [[송(춘추전국시대)|송(宋)]]에 봉해 상나라 유민인 [[상족]](商族)들을 다스리게 한다. 또한 상의 옛 수도인 조가(朝歌)에 무왕의 아우인 [[위강숙|강숙 봉]]을 봉하니 그의 봉국이 [[위(춘추전국시대)|위(衛)]]이다. 상의 옛 수도에 그대로 봉했던 무경 때와 달리 상나라 왕족인 미자는 상의 옛 수도에서 떨어진 곳에 봉하고 [[상족]](商族)을 나누어 강숙에게 봉했기 때문에 [[상족]](商族)의 세력은 많이 약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