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계역 (문단 편집) === 상계동의 판자촌 === 상계동 벽산아파트와 상계동 대림아파트가 있는 곳은 1980년대 대규모 철거가 이루어진 판자촌 달동네였다. [[1988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서울 전역에 재개발의 바람이 불었고, 이는 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을 방문할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당위를 타고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올림픽을 잘 치러야 한다는 명분을 가진 정부는 서울 재개발을 강력히 밀어붙였는데 이 때 재개발 대상이 된 곳 중 하나가 상계역 앞 판자촌이었다. 1986년에 상계역 앞 판자촌은 철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빈민가에서 무리한 철거 집행이 이뤄진 탓에 거주자들이 강력히 반발했으나, 결국 [[행정대집행]]을 통해 최후까지 반발하던 세입자의 건물들도 1987년에 완저히 철거되고, 1989년에 벽산아파트와 대림아파트로 재개발된다. 영화 [[홀리데이(한국 영화)|홀리데이]]에서도 살짝 언급되었다. 당장 도시 미관을 개선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하층민들에게 반감을 샀고, 그것이 그대로 폭발하여 1993년 [[전국철거민연합]]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파일:attachment/an_excerpt_from_the_film_sanggyedong_olympic.jpg]] 1960~1970년대 달동네(또는 판자촌)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청계천이나 2000년대 신림 난곡지역의 철거 이슈에 비해 상계동 달동네 철거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철거가 남의 일이 아니었던 1960~1970년대의 상황에 비해 1980년대 중후반쯤 되면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덕분에 판자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게 줄었고, 서울 올림픽으로 찾아올 많은 외국인에게 멋있는 서울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대규모 달동네 철거 이후 해당 지역에서 쫒겨난 거주자들이 유입되어 형성된 소규모 달동네들은 이런 사회적 무관심과 분할되어 작아진 규모 때문에 빈번히 강제 철거를 당했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관심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특히 상계동, 그리고 2000년대의 난곡이 그렇다. 김동원 감독은 이 시기 철거민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3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을 찍었는데, 이 작품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에 남을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상계역 앞 판자촌은 철거되었지만, 지금도 상계동 인근 수락산 자락에는 판자촌 가옥 구조 형태가 남아 있는 달동네가 몇몇 곳 남아 있다. 판잣집을 짓고 살다가 벽돌 등으로 집을 지어서 판잣집은 아니나 과거 판잣집 가옥 구조 형태는 남아 있다. 중계본동 [[흥안운수]] 차고지 근처의 [[https://zomzom.tistory.com/3690|백사마을]], [[당고개역]] 주변인 [[https://zomzom.tistory.com/3792| 당현천마을]], [[https://zomzom.tistory.com/3807| 양지마을]], [[https://zomzom.tistory.com/3797| 합동마을]], 희망촌 등이 그것이다. 이들 달동네는 '''1967년'''부터 정부가 서울 도심 판잣촌을 밀며 토지 불하를 조건으로 판잣촌 주민들을 이주시켜서 형성된 지역으로, 서울 최후의 달동네로 많이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당고개 지역도 최소 1970년대부터 형성된 유서 깊은 지역이다. 서울 다른 지역 달동네와 달리 여기는 정부가 계획적으로 조성된 달동네라는 점이 특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