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계군벌 (문단 편집) === 탕성즈 정권 === 1926년에 이르자 후난성에서는 국민당의 영향력이 강성해졌는데 이를 등에 업고 [[계계군벌]]과 연계하여 떠오른 것이 4사단장 [[탕성즈]]였다. 탕성즈는 대중운동을 통해 자오헝티를 압박해 쫓아내고 후난성장에 취임했으나 자오헝티 계열의 예카이신(葉開鑫, 섭개흠)과의 전쟁이 붙게 되었다. 예카이신에게 패한 탕성즈는 중국 국민당에 합류, [[국민혁명군]] 8군 군장에 임명되어 1926년 7월 [[국민당의 1차 북벌]]에 참가하여 다시 후난으로 돌아와 후난과 후베이를 모두 장악하고 [[장제스]]와 [[국민혁명군]] 총사령관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된다. 그러던 중 1927년 [[4.12 상하이 쿠데타]]가 일어나 우한 국민정부와 난징 국민정부가 분열되는데 상계군벌들은 대부분 우한 국민정부의 편에 서게 되었지만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과격한 토지혁명과 폭동으로 인해 [[허젠]], 허극상. 하두인 등의 상계군벌들이 분노하여 [[마일사변]]을 일으키면서 우한 국민정부는 위기에 몰렸고 여기에 [[펑위샹]]이 장제스와 손을 잡으면서 상계군벌들은 월계군벌 [[장파쿠이]]와 힘을 합쳐 난징을 군사적으로 토벌하고자 했다. 결국 8월에 우한과 [[봉천군벌]]의 공격을 동시에 받은 장제스가 [[계계군벌]]의 압박으로 사퇴하면서 [[영한합작]]이 이루어졌는데 탕성즈는 자신의 힘만 믿고 안휘성 정부를 취소하고 멋대로 장악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분노한 [[리쭝런]], [[바이충시]]에게 [[당계전쟁|토벌당하고 쫓겨나면서]] 후난성과 후베이성은 계계군벌이 장악했고 상계군벌은 몰락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