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삽교천 (문단 편집) === [[박정희]]의 마지막 공식 행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박정희 삽교천.jpg|width=100%]]}}} || || {{{#000 '''1979년 10월 26일 오전[br][[삽교천|{{{#000 삽교천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000 박정희}}}]] 대통령'''}}}[* 이 사진이 박정희의 생애 마지막 사진이기도 하다.] || '''[[1979년]] [[10월 26일]]''' 오전에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이 열렸는데 이때 '''[[박정희]]''' 전 대통령도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10.26 사태|암살]]'''당하면서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은 '''외부에 공개된 박정희의 마지막 공식 행사 참석'''이 되었다. 사실 이 행사가 끝나고 '''[[중앙정보부]]''' 시설인 [[KBS 한민족방송|KBS 당진 송신소]] 시설 보강 준공식에 참석했는데 이 행사는 [[국가보안시설]] 관련 행사였기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훗날 박정희의 당진 송신소 준공식 참석 장면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후 26년이 지난 2005년 [[KBS 영상실록]]에 등장한다.] KBS 당진 송신소는 [[북한]]과 [[중국|중공]] 등 [[대북방송|당시 공산권 국가에 대한 심리전 방송]]을 하는 시설이었는데 중앙정보부가 깊이 관여했기에 중앙정보부 시설이라고 불렀다.[* 이날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는 자신이 맡은 중앙정보부 관할 시설의 준공식이었으므로 본인도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나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전화로 "[[부마민주항쟁|지금 시국이 어지러운 판인데]] 정보부장까지 서울을 비우면 국가안보상 곤란합니다. 내가 각하를 모시고 다녀올테니 김 부장은 서울을 지키시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 그래도 차지철의 전횡에 분노한 김재규는 차지철의 이 전화 때문에 그날 '[[10.26 사태|거사]]'를 치르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준공식 때 그날 저녁에 터질 사건을 암시하는 듯 소소한 해프닝들이 있었는데, [[10.26 사태]] 문서 참조. 이 때문에 삽교천방조제에서 박정희 추모제를 지내기도 한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생전 마지막 공식 행사가 삽교방조제 준공식이었던 관계로 지역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행사라고 한다. [[분류:충청남도의 하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