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팔선 (문단 편집) ==== 북위 39도선으로 분단되었을 경우 ==== 한편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참모였던 에드워드 로우니의 회고록 《Smoky Joe and General》에 따르면, 일본의 공식 항복([[1945년]] [[9월 2일]]) 직전 [[조지 마셜]] 장군이 참모들에게 남북 분단선 설정안을 건의토록 제의했을 때 [[딘 러스크]] 대령 등 영관급 장교들은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 제국|러시아]]와 [[일본 제국|일본]] 사이에 오갔던 '''북위 39도선 분할'''을 주장했으나, 그들의 상관이었던 조지 아더 링컨 장군이 [[예일대]] 지리학과 교수인 스파이크만이 1944년 저술한 '평화의 지리학'을 인용[* 근데 막상 그 평화의 지리학에 나오는 38도선은 한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위대한 인물과 사상과 발명의 대부분이 38도선 이북에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었다.]하면서 38도선을 주장[* 참고로 군 주둔 38선은 미 소간에 종전 직후인 8월 16일 새벽에 결정됐다. 정확히 얘기하면 분할 통치선을 39선으로 할 지에 대해 의논이 있었던 것이며, 이미 군대 주둔 분계선은 38선이였다.]했다고 한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90012|#]] 참고로 '''북위 39도선은 [[평양시|평양]]을 관통한다.''' 이에 관해서는 후술. [[파일:39thparellelkorea.png|width=100%]] 만약 북위 39도를 기준으로 했다면 '''[[니코시아|평양의 경우 북위 39도선이 도시 중심부를 정확히 관통한다.]]'''[* 이는 현재 북한이 적용하는 평양의 범위가 아닌, 광복 당시의 영역을 기준으로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남포시]]는 39도 이남, [[원산시]]는 39도 이북이 된다.[* 북위 38도선이 도시를 관통했던 개성도 도심 뒷산인 송악산을 관통했지, 시내 자체를 둘로 나누진 않았다. 39도선은 원산시 경계에서 남쪽으로 8km 정도 떨어진 [[안변군]] 석왕사면, 신모면 일대를 지나고, 당시 원산 행정구역 안쪽은 단 1cm도 지나지 않는다.] 대략 [[통일신라]]의 영토와 비슷해진다. 이 경우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포함해, 평양 도심의 1/4이 남한령이 된다. 그리고 [[평양역]]은 북위 39도선이 역 구내를 지나가기 때문에[* 북위 39도선이 대략 평양역 구내의 남쪽 끝단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을 지나간다.] 철도역의 기능을 상실한다. 다만 남한령 평양 시내가 39도선과[* 평양 지도를 살펴보면 대동강이 남서쪽 방면으로 흐르다가 [[두로도]]가 시작되는 위치에서 갈라진 북쪽 물줄기가 북서쪽으로 꺾여 올라온 다음 이 물줄기가 다시 남서쪽으로 꺾여 남쪽 물줄기와 만나는데, 북위 39도선이 이 북쪽 물줄기의 최북단 강안을 지나가서 북위 39도선과 대동강 사이에 초승달 모양의 땅이 갇힌다.]대동강 사이에 갇혀 사실상 고립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북위 39도선이 분단선이 되었을 경우에는 대동강을 따라서 경계 조정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38도선에 아슬아슬하게 남한령으로 걸렸던 [[해주시]] 남쪽 끝 반도 지역이 결국 북한령으로 조정된 것처럼 경계 조정이 되지 않더라도 방어상의 어려움 때문에 남한에서 남한령 평양 시민들을 대동강 이남으로 이주, 대동강 이북 지역을 비무장지대화 시켜 [[평양시|평양]]급의 대도시가 '''유령 도시가 되는''' 아스트랄한 상황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평안남도에서는 남포시를 포함한 용강군과 중화군 전체, 강서군 일부, 대동군과 평양시 일부, 강동군과 성천군 극일부가, 황해도에서는 곡산군 일부를 제외한 전역이, 강원도에서는 통천군 일부와 이천군 극일부를 제외한 전역이, 그리고 함경남도에서 문천군 극일부와 안변군 2/3 정도가 남한령으로 들어오게 된다. 아예 간단하게 그냥 평안도와 함경도 전체를 북한에 내주는 방법도 있다. 왜냐하면 39도선은 평안도와 함경도 남쪽 경계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원산은 강원도가 아니라 함경남도 소재였다.] 이렇게 되면 함경남도와 평안남도 남쪽 행정구역 경계가 그대로 자연적인 남북 분할 경계가 되었을 테니 오히려 큰 고민 없이 선택되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러일전쟁 직전 일본과 러시아의 39도선 분할안도 이렇게 평안도, 함경도 일대를 통째로 러시아가 갖는 안으로 하려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