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천포시 (문단 편집) === 근세 === [[고려시대]]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해군기지의 역할을 하기 시작하여, [[조선]] 건국 이후인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어 삼천포의 비밀 항구에 숨겨놓았다가 사천쪽으로 [[기습]]하는 전략으로 최초로 거북선을 출정한 [[사천 해전]]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대방진 굴항이라 불리는 이 비밀 항구는 뱃길을 구배지어 만들어 놓고 해안가 쪽에 토성 축대를 높게 쌓고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서 외부에서 항구가 보이지 않게 만들었으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사천을 비롯한 인근 지역 백성들이 손수 둑을 쌓은 덕분이라고 한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으로 대방진 굴항이 있다. [[창선삼천포대교]] 아래쪽 군영숲 바로 옆에 있는데 원래 생긴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일부러 구멍처럼 만든 항구가 굴항이다. [[고려]] 말기인 [[14세기]]에 왜구가 들끓게 되자 이를 막으려고 구라량이라는 진영을 설치했던 자리이다. 이 구라량이 [[조선]] [[세종(조선)|세종]] 시절 고성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거의 비워졌고 그러다가 다시 진영을 설치한 것이 [[순조]] 시절이다. 이때 활처럼 둥글게 둑을 쌓아 굴항을 만들고는 전선 두 척과 병사 300명을 두어 지키게 했다. 그곳이 지금은 주민들 어선 선착장으로 쓰이고 있다.[* 출처: 나고자란 우리 사천, 경남도민일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