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종지도 (문단 편집) == 평가 == 공자의 어머니인 안징재는 남편이 일찍 죽어버리는 바람에, 공자를 키우기 위해 남편없이 혼자서 생계를 꾸려 나갔다. 당시 아들인 공자의 나이가 매우 어렸기 때문에 아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심지어 안징재가 그의 남편 숙량흘과 만났을 때 야합(野合)[* 야합(野合): 들판에서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뜻. 또는 정식 혼례를 치르지 않고 부부가 되는 것.]을 했었다는 것은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자는 집안일만 해야 된다"거나 "집 밖에 나가면 안 된다"거나 "낮에 뜰에 나가 놀지 않는다"는 삼종지도의 내용은 공자가 했던 말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이 공자의 권위를 빌려서 추가한 문장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한 공자는 그의 저술에서 '여자'에 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다만 《논어》에서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겸손하지 않고, 멀리 하면 원망하느니라"이라는 구절과 《공자가어》의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에 대한 부분에서만, '여자'를 비하하는 언급을 하기 때문에, 최근 학자들은 이 말이 실제 공자의 말이 아니라 후대에 첨가된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했던 상황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고단했던 것은 사실이며, 여자라고 예외가 될 순 없었을 것이다. 여자의 삶을 '집 안'으로 제약을 가했던 것은 당시 극도로 혼란했던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잠재적 위험에 상존할 때는 물리적 약자가 강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까지 이어지기도 하는 여자들의 '통금'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행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통금 문화 자체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제약은 그만한 시대상황에 기반한 것임을 이해하여야 하고, 비교적 안전한 현대의 상황에서 이를 적용시켜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더군다나 미성년 시기를 지나 다 큰 성인에게도 '행동과 직업의 제약'을 가한 것은 특수성을 잘못 보편화시킨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 숙종 이후로 유교적 통제를 강화하였을 때, 이 삼종지도 구절을 들어 여자를 구속하였다. 유교가 조선시대의 전근대적 문화로 비판받는 주된 이유에 이 '삼종지도'가 있기에, 유교계 역시 여기에 대한 많은 반성을 해오고 있으며 또한 문화적으로 전래된 나쁜 습관에 대한 청산도 진행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