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위일체론 (문단 편집) == 삼위일체의 논리적 오류 == [include(틀:토론 합의, this=, 토론주소1=ScatteredCloudyOldStove, 합의사항1=논리적 오류를 설명할 때 동일성 관계의 추이성을 핵심으로 서술, 토론주소2=MuddledLuxuriantLackadaisicalCrowd, 합의사항2=논리적 오류나 특정한 관점이라는 부연 없이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형태의 서술을 금지)] 삼위일체론은 A=C가 참이고, B=C가 참인데 A=B는 참이 아니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대상의 동일성 관계에 있어서 추이성을 위반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삼위일체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동치관계]] 문서 참조.[* 다만 해당 문서는 동치관계의 전반을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용하는 것은 '''대상의 동일성 관계'''이다.] 'a와 b는 같은 대상이다'라고 할 때 논리학에서는 그 '같음'이라는 관계에서 추이성이 성립한다고 본다. 예시를 통해 설명하면 이러하다. 두 명제 "[[해리슨 포드]]는 [[한 솔로]]를 연기한 사람과 같다," "한 솔로를 연기한 사람은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한 사람과 같다"에서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해리슨 포드]]는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한 사람과 같다" 라고 추리할 수 있다. 지금 이 예시가 너무 당연하고 사소해서 '뭐 이딴 걸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해?' 라는 생각이 들면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다만 '같다'라는 표현이 중의적이라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가령 기종이 같은 두 스마트폰이 있을 때 '이 두 스마트폰은 같다'라고 하는 것은 그 두 스마트폰이 같은 종류 혹은 모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그 두 스마트폰이 하나의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같다'라는 말은 마치 " '[[아이유]]'와 '이지은'은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할 때 바로 그 '같다'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는 '아이유'라는 말과 '이지은'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같다.] 삼위일체는 이 간단한 생각과 어긋난다. 본문위 맨 위에 나온 이미지는 '삼위일체 방패'라 부르는 것이다. pater, filius, spritus sanctus는 각각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며, deus는 하느님을 의미한다. est는 '같다'를, 'non est'는 '같지 않다'를 의미한다. 일단 성령을 제외하고 성부와 성자만 생각하자. 그림은 '성부는 하느님과 같다'는 것과 '하느님은 성자와 같다'것을 나타낸다. 해리슨 포드의 예를 생각하면 당연히 '성부와 성자는 같다'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림에서는 '성부와 성자가 같지 않다'고 표시하고 있다.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성부와 하느님이 같고 하느님과 성자가 같으면 성부와 성자도 같아야 하는데, 삼위일체론에서는 성부와 성자가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니 논리적인 관점 혹은 상식적인 관점에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 삼위일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삼위일체가 성경과 일치하는 신에 대한 설명일지는 몰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틀렸다'라고 하면 간단하게 전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위에서도 언급하였듯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였다. 삼위일체를 굳이 '''신비'''라고 부르는 것은 그런 이유다. 즉 삼위일체론은 논리적인 언어로 이해하여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악의 문제]]처럼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신학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은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체에 있어서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동등한 위격을 지니고 있다.'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삼위일체가 우리의 상식에 부합함을 보인 것도 아니고 우리의 상식이 틀린 것을 보인 것도 아니다. 이 설명은 삼위일체를 '신만이 가진 신비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학에서 이런 두루뭉술한 해결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서 해석과 우리 상식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이견은 있으나 삼위일체는 성서에서 묘사하는 [[하느님]]을 가장 잘 나타내는 개념이다. 신학자들은 삼위일체 개념이 일반 상식과 충돌되지 않도록 무던히도 노력했으나,[*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삼위일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런데 사랑이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받는 사람, 사랑 그 자체. 이 셋은 서로 다르지만 사랑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무슨소리야--] 그 중에 성공한 것이 없으니 신의 신비로 넘기는 것이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 된다. 신학계 내에서는 삼위일체의 논리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학자가 여전히 있고, 일부 학자는 논리적 문제가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신학계 바깥에서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 혹자는 '삼위일체는 세 위격이 본질에서 동일하지만 위격에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치관계의 추이성이 여기에 적용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장이 타당하려면 지시에 대한 철학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아이유'라는 단어가 특정한 한 사람을 지칭하듯이, '성부'라는 단어도 특정한 신을 지칭한다. 동일본질 동등위격에 따르면 '성부'라는 단어는 신이라는 본질과 함께 세 위격 중 하나를 동시에 지칭해야 한다. '성부'가 지칭하는 그 본질과 그 위격이 같은 대상이라면 이행성 문제를 피할 수 없고 위격이 본질과 같은 대상이 아니라면 성부라는 위격은 신이 아니다. 존재를 속성으로 간주하여 생각한다면 설명할 수는 있다. 가령 '성부'라는 위격이 '신성'이라는 속성을 가진다는 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 역시 삼위일체의 근본 정의와 어긋나는 동시에 철학적으로도 정당화가 가능하지 않다. [[칸트]]가 논파한 이래로 존재를 속성으로 간주하는 학자는 없다. 양태론 등 반삼위일체 교리 중 일부는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 그러나 논리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설명들은 모두 성경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아 이단으로 분류된 교단을 제외하고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2단락의 서술을 보면 '알 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고 되어있는데 성경에서 나타난 신에 대한 묘사를 최대한 커버하는 설명을 만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성경에서 묘사하는 신은 논리적 혹은 상식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신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성경과 위배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