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통일전쟁 (문단 편집) ==== 후기신라론 ==== 통일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던 공간과 집단들을 통합하거나, 원래 하나였다가 나누어진 여러 지역과 집단들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삼국인들이 주관적으로 서로를 외국인으로 간주하였고, 객관적으로도 서로 다른 존재 양태를 지녀 하나의 동질적 족속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면, 이 시기 역사상과 인물을 대상으로 '민족'을 기준으로 한 포펌이나 통일의 허실을 논하는 것은 민족주의 역사학의 자위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결국 '삼국통일'이라는 점도 후세인의 관념에 따라 만들어진 주장이므로, 삼국통일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식이다. '''즉, 삼국통일이 아니라 단순히 신라의 "정복"이라는 주장이다.'''[* 애시당초 고구려 옛땅을 신라가 전부 정복한 것도 아니다.] 민족 근대 형성설 입장에 선 논자들이 피력한 이런 개념은 삼국시대에 삼국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신라와 발해는 서로 이질적인 실체였다고 주장하면서, 7세기 후반의 신라를 통일신라라는 말 대신 후기신라로 명명하는 개념이다. 이는 남북국 시대론에서의 후기신라와 같은 표현이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8세기 이후 신라인들은 발해 지역을 이역(異域)으로 여겼고, 양자는 시종 대립적이었다고 보며, '말갈족의 발해'와 신라가 시종 대립적 관계였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견해에서 신라 삼국통일론은 부정되며, 더 나아가서 아예 발해사를 한국사에 포함시키는 일 자체가 거부되는 것이다. 남북국시대론도 이런 견해에선 설 자리가 없다. 북한 학계에서는 '후기신라'라는 명칭을 본격적으로 사용했고, 초기에는 신라가 당과 결전을 벌여 이를 몰아낸 사실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다가 1960년대 이후부터는 발해사를 강조하고 신라통일론을 부정하였다. 나중에 가면 오히려 더 발해에 비중을 두는 식으로 전개가 되었다. 남한에서도 일부 사학자들이 후기신라의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통일 이전의 신라는 '전기신라'라고 부르지 않느냐는 반박도 나오고 있다.[* 보통 후(後) 고(古)를 붙여 시대의 전후를 구분하지, 전기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예, 고구려-후고구려-고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