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통일전쟁 (문단 편집) ==== 왜국이 고구려를 도우려 했다? ==== 2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 왜군이 고구려를 지원하려고 했다는 전승이 전해지기도 한다. >661년에 왜국에서 고구려를 구하러 간 군의 장수들이 백제 가파리(加巴利)의 해안에 배를 대고 불을 피웠다. 재가 변해 구멍이 되어 작은 소리가 났는데 화살이 날며 우는 소리와 같았다. 어떤 사람이 고구려와 백제가 끝내 망할 징조인가라고 했다. >---- >'''《[[일본서기]]》 권 제27 [[덴지 덴노]](天智 天皇)''' 그렇다면 과연 왜군이 실제로 고구려에 파견되었을까? 일본서기가 전하는 왜국의 고구려 구원 움직임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 달에 당과 신라인들이 고구려를 공격했다. 고구려가 우리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므로 장군과 군사들을 보내어 소류성(梳留城)에 웅거하게 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가 그 남쪽 경계를 침략할 수 없었으므로, 신라가 서쪽 진지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 >---- >'''《[[일본서기]]》 권 제27 [[덴지 덴노]](天智 天皇)''' 즉 당시 왜 조정은 고구려를 구원하기 위해 왜군을 백제 부흥군 본거지인 [[주류성]]에 주둔시켰고, 그것이 실효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국과 고구려의 군사동맹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당나라가 그 남쪽 경계를 침략할 수 없었으므로, 신라가 서쪽 진지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 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다른 기사 등에서 말하는 당시 상황과 맞물려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사의 '고려'가 '''백제를 착오로 적은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다름 아닌 일본인인 이케우치 히로시(池內 宏)의 주장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이것을 왜국의 백제 부흥군 지원에 관한 내용으로 보았다.] 곧 백제를 지원하려고 주류성에 왜군이 주둔함에 따라, 당군이 웅진성 이남의 구 백제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지 못하였고 신라군 또한 서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기사가 전하는 왜국의 고구려 지원은 없었던 것이 된다. 혹은 백제 부흥운동에 왜국이 개입하여 주류성에 주둔, 당과 신라를 측면에서 견제하여 고구려를 지원한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보기도 한다. 백제에 주둔하던 왜국의 장수가 고구려에 가서 군사 사항을 협의하고 백제 부흥군으로 돌아와 규해(糾解)에게 보고하였던 일도 있었다. 왜 조정은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는 것이 고구려를 지원하는 방략이 될 수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지원하는 면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때는 일본서기가 만들어질 시점 편찬차의 해석과 의미 부여라는 시각이 강하다. 왜국의 당면 과제는 눈앞에 전개되는 백제 부흥군 지원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