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통일전쟁 (문단 편집) ==== 신라, 백제에 대한 당의 압박 ==== 또한 당태종은 644년 귀국하는 신라의 사신 김다수(金多遂)에게 국서를 보내어, 선덕여왕에게 신라군이 대고구려 전에 참전할 것을 요구하였다. 논란이 벌어졌는지 신라 조정에선 별다른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 당태종은 이듬해인 645년 2월 고구려 원정에 나서면서 다시 한번 조서를 보내어 당군이 4월 상순에는 고구려 경내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니, 신라군이 당의 수군대총관 장량의 절도를 받을 것이며, 장량의 주둔처에 신라 군관을 파견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편 백제 의자왕에게도 당나라의 조서가 도착하였다. 644년 말 무렵 백제 사신인 부여강신(扶餘康信)이 당나라에 파견되어 백제가 당나라의 명을 어기고 고구려와 협력하여 신라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발뺌하고, 당나라 의원을 백제에 보내줄 것, 백제 학문승의 귀환 등을 요청하였다. 그에 대한 답신의 형태로서 당태종은 의자왕이 요청한 사항에 대해 조처하였음을 알리고, 대 고구려전에 백제가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신라에 파견하는 당의 사신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신라에 도착하게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조서는 645년 초봄에 전해졌다. 그런데 이 조서에선 선덕여왕에게 보내진 앞의 조서와는 달리, 파병이 주요한 목적으로 다뤄지진 않고 여러 가지 사항을 포괄적으로 언급하였으며, 파병을 요청하면서도 당군이 언제 출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여하간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첫머리에 백제가 고구려와 한편이 되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며 은연중에 백제를 위협하는 서술을 하였다. 이 조서는 오히려 신라가 대고구려전에 참전할 경우, 백제가 이를 공격하여 저지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백제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