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수혜자 (문단 편집) === [[장료]] === 일단 정사나 [[삼국지연의|연의]]를 막론하고 장료가 위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힐 정도로 군사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 연의에서는 가상의 일기토 기록으로 많은 무장들이 파워인플레를 받으면서 상향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정사에서도 일신의 무예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장료는 상대적으로 너프가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관우와 엮인 덕분에 인격적으로 상당히 우대를 받았다. 또한 위나라의 주요 장수들이 줄줄이 너프되는 탓에 반사적 효과를 받아 위나라의 대표 무장격이 되었다. 실제로는 조인이나 우금의 공적은 장료에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상회한다 봐도 무방하다. 백문루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나관중]]의 창작으로, [[정사 삼국지|정사]]에서는 여포가 패망한 이후에 잔당을 인솔하여 [[조조]]에게 투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연의에선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사로 잡혀서 끌려간 백문루에서 조조를 역적이라고 욕하다가 분노한 조조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관우]]와 [[유비]]가 조조에게 장료는 충의지사이니 살려달라고 청하여 살아남고 조조군의 장수가 된다.[* [[하후돈]]이 눈알을 잃기 이전에, 장료가 여포의 명령에 따라 소패성을 공격하자 관우가 "당신 같은 충의지사가 어찌 이런 짓을 하냐"라고 타이르자 공격을 하지 않고 물러갔다는 식으로 서로 마음이 맞는 걸로 나온다. 그래서 백문루에서 관우(&[[유비]])가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더욱 자연스러워졌으며, 이후 관우가 조조에게 잠깐 투항하도록 설득하는 식(후술할 세 가지 죄와 세 가지 조건)으로 조조와 관우의 의견을 사이에서 전달하는 식의 역할까지 맡는다.] 실제로도 관우와는 친우관계를 가졌던 까닭에 백마 전투 이후 조조가 그를 시켜 관우의 속을 떠본 것[* [[안량]]을 베고 난 후 공을 세운 그가 떠나버릴까 염려하여 장료를 시켜서 '[[조조|조공]]이랑 [[유비]]랑 누가 더 이쁨?'하고 물어보게 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루에서 장료의 목숨을 살려주거나 하비에서 세 가지 죄[* 관우가 싸우다 죽으려 들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말렸다. 첫째, 관우 같은 뛰어난 장수가 목숨을 가벼히 여기는 것은 [[후한|한황실]]에 대한 불충. 둘째,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기로 한 결의를 어기는 일이 됨. 셋째, [[유비]]의 가솔들을 책임질 책무도 버리는 것임.]를 내세워 항복을 권유한 것은 모두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여기에 [[서황]]이 더해져서 세 명이 제법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의에서도 이후 [[방덕]]이 목숨을 잃자 [[서황#s-1|서황]]이 대신 [[관우]]를 잡으러 가는 내용이 나오며, 서로 적국의 장수로서 대치하는 와중에 긴 시간 사담을 주고받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관우가 당황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서황은 "사사로운 인정으로 나랏일을 그르칠 순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장면은 정사에도 나오는 기록이다. 다만 관우에게 희석되어 장료 본인의 캐릭터가 흐릿해지는 경향도 있다. 다소 비판적으로 보면 관우 추종자 1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