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지명/형주 (문단 편집) == [[위(삼국시대)|위]] 소속 형주자사부, 일명 영주 == 219년에 조조는 [[손권]]을 공식적인 형주목으로 인정했는데, 이듬해 조조가 죽자 그 뒤를 이은 [[조비]]가 선양을 받고 손권을 오왕에 책봉하면서 손권의 종속을 확실히 하고자 했다. 조비는 [[손등#s-2|손등]]을 낙양으로 보내올 것을 요구하는 한편, 222년 5월에는 손권이 차지하고 있는 양주(揚州)와 형주 영역을 형주로 재편하고 위나라 영역 내의 형주 북부지역을 형주에서 분리하여 영주(郢州)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손권은 오왕 책봉은 받아들이면서 손등을 보내지 않았고, 이에 조비는 손권이 종속할 의사가 없음을 확신하여 같은 해 10월에 손권의 책봉을 취소하고 형주목 지위를 부정하면서 형주 재편 조치를 환원하여 영주를 다시 형주로 고쳤다. 한편 220년에 [[맹달]]이 투항하자 익주의 서성군·상용군·방릉군을 공략했는데, 이때 상용군과 방릉군을 통합해 신성군으로 만들고 모두 형주에 소속시켰다. 263년에 촉한이 멸망하자 오나라는 건평군을 통해 익주를 점거하려고 했으나, [[나헌]]이 이를 격파하였다. 오히려 이 여파로 무릉군 4현이 위나라로 투항하여, 나헌이 무릉태수 겸 파동감군으로 임명되었다. 269년에는 나헌이 북상해 건평군의 무현·건시현을 점령하여 건평도위를 설치했고, 275년에 건평도위부를 건평군으로 승격시켰다. 서진이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형주를 다시 통합하였는데, 이때 분할되어 있던 강하군·무릉군·건평군도 함께 재통합 되었다. * '''치소'''(治所)[* 형주자사 유표가 양양현을 거점으로 삼았다가, 208년 적벽대전 이후 완현에 형주자사의 치소를 두었는데, 형주 전선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243년 무렵에 [[왕창(삼국지)|왕창]]은 오나라의 침공에 대비하고자 형주자사의 치소를 신야현으로 보다 전진해 배치했다.]: [후한]무릉군 한수현→[190]남군 양양현→[208]남양군 완현→[243]남양군 신야현→[서진]남군 강릉현 *190년?: [[유표]]가 남양군을 분할해 장릉군 설치. *208년: 강하군의 2현이 양주 기춘군으로 재편. 남양군을 분할해 남향군 설치. 남군을 분할해 양양군·임강군 설치. [[적벽대전]] 이후 임강군은 동맹군 측이 점령함. *220년: 익주 서성군·상용군·방릉군을 위흥군·신성군으로 재편하고 형주에 소속시킴. *228년: 신성군을 분할해 상용군·석군 설치. *230년: 상용군을 폐지하여 석군에 합병. *237년: 석군을 분할해 상용군 재설치. 석군을 폐지하여 위흥군에 합병. *253년: 상용군을 폐지하여 위흥군에 합병. 의양군(장릉군)을 폐지하여 남양군에 합병. *259년: 위흥군을 분할해 상용군 재설치. *265년: 남양군을 분할하여 의양국 재설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