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지명/교주 (문단 편집) == 개요 == 기원전 107년에 처음 자사를 설치할 때, 이 방면을 맡는 자사의 감찰 구역이 교지군 방향에 있었기에 교지자사부(交阯刺史部)로 명명했다. 지금의 [[광둥성]]·[[광시 좡족 자치구]]·[[하이난성]] 일대와 [[베트남]] 북반부에 해당한다. 196년에 교지자사 [[주부(삼국지)|주부]]가 이민족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교지태수 [[사섭]]은 자기 동생들을 합포태수·구진태수·남해태수로 임명하여 교지자사부 지역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 [[조조]]는 주부의 후임으로 [[장진(삼국지)#s-2|장진]]을 파견했고, 201년에는 그를 교주목으로 승진시켰는데, 이때부터 교지자사부가 [[교주#s-5|교주(交州)]]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장진은 교주목으로 승진할 무렵에 부하에게 피살당했다. 이를 교주를 병탄할 기회로 여긴 [[유표]]는 [[뇌공#s-1|뇌공]]을 교주자사로 [[오거(후한)|오거]]를 창오태수로 임명해 교주로의 진출을 시도했는데, 오거는 창오군을 장악하자 뇌공을 형주로 쫓아내 독립했다. 이때 조조는 사섭을 수남중랑장(綏南中郎將)으로 임명해 교주 지역에서의 군사통제 권한을 부여했다. 210년에 [[유비]]의 형주 장악을 인정한 [[손권]]은 [[보즐]]을 교주자사로 임명해 세력 확장을 시도했다. 사섭과 오거는 일단 손권에게 종속했으나, 오거는 손권에게 협력적이지 않았고, 태수로써 자립을 유지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보즐이 오거를 제거하여 교주는 손권의 통제에 들어오게 되었다. 213년에 조조가 [[구주#s-2|구주]]를 회복한다는 구실로 교주를 폐지하고, 교주 소속의 군들을 각각 형주와 익주로 분할하였는데, 이미 교주는 손권의 영역이 되어있었기에 실질적인 효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26년에 사섭이 죽자, 당시 교주자사 [[여대(삼국지)|여대]]는 사섭 일가의 영향력이 강한 합포군·교지군·구진군·일남군 4군을 교주에 남기고 나머지를 광주(廣州)로 분할하는 구상을 하여 광주자사(廣州刺史)를 자처했는데 손권이 이를 받아들였고, 이에 격분한 사섭 일가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그들이 제거되었기에, 굳이 광주를 분할할 필요가 없어져 그 조치를 취소했다. 교지태수 [[손서#s-2|손서]]와 [[등구]]의 연이은 폭정으로 263년에 [[여흥]]이 봉기를 일으키자, 교지군·구진군·일남군이 이에 호응하여 위나라로 투항하고, 위나라에서는 [[곽익]]을 보내 여흥을 도왔다. 이에 이듬해 오나라에서는 과거 광주 분할안을 실행하는 한편, 위나라로 투항한 3군과 합포군·주애군을 교주로 편성하고 265년에는 [[유준(삼국지)|유준]]을 교주자사로 임명하여 268년에 교주 탈환을 시도했으나, 곽익이 이를 막아내고 유준 또한 전사했다. 오나라에서 3군을 탈환한 것은 곽익이 죽은 뒤인 271년의 일이었다. 3군을 되찾은 271년에 새로운 현들을 다수 설치했는데, 이는 오나라의 다른 지방 출신 관원들을 다수 파견하여 이 지역의 원주민들인 월족 계통의 이민족들과 [[한족]] 토착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라 여겨진다. 279년 [[곽마]]가 광주 계림군에서 반란을 일으켜 인근의 광주 남해군·창오군·시흥군 일대까지 점령했다. 오나라는 이 반란을 진압하려 했으나, 이때 서진의 공격을 받아 280년에 멸망했다. *'''치소'''(治所): [후한]창오군 광신현→[211]남해군 번우현→[264]교지군 용편현 *광주자사: [264]남해군 번우현 *197년: 고량군을 폐지하여 합포군에 합병.[* 사섭 형제들이 한 일로 짐작된다.] *218년: 합포군을 분할해 영포군 설치. *220년: 합포군을 분할해 고량군 재설치. *242년: 주관군(합포군)을 분할해 주애군 설치. *248년?: 임읍국의 공격으로 일남군 서권현이 점령당했기에 이를 수복하고 일남속국도위를 설치함. *260년: 영포군을 폐지하여 합포군 북부도위부로 재편. *263년: 교지군·구진군·일남군이 위나라에 투항함. *264년: 남해군·창오군·울림군·고량군을 광주로 분할함. 광주 고량군을 분할해 광주 고흥군 설치. *265년: 시안군·시흥군이 형주에서 광주로 이속함. *271년: 오나라가 교지군·구진군·일남군을 수복함. 교지군을 분할해 신창군·무평군 설치. 구진속국도위부 설치. *274년: 광주 울림군을 분할해 광주 계림군 설치. *278년: 구진속국도위부·일남군을 통합하여 구덕군으로 재편. *280년: 서진이 주애군을 폐지하고, 구덕군을 분할하여 일남군 재설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