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정사) (문단 편집) ==== 오류일 가능성이 높은 기술 ==== * 조조가 원상에게 패한 기록을 삭제했다. 후한서 원소열전에서는 여양 전투에서 조조가 승리한 후, 진군하여 업을 포위하려 했지만 원상이 역격하여 깨트리자 허도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이 기록이 삼국지에는 업을 포위했으나 이길 수 없어 돌아갔다고 나오며 원소전에서도 원상의 승전 기록이 생략되었다. * 한중 공방전에서는 유비가 조조를 상대로 험고한 곳을 지키며 교전을 피했다고 하지만 배송지가 인용한 여러 다른 사서들에 따르면 둘 사이에는 상당한 교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회전을 하지 않고 요충지를 지키며 국지적인 교전이 벌어졌기에 교봉을 피했다고 서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 공손찬이 분무장군을 받은 시기는 정사 삼국지와 후한서 중 어느쪽이 맞는것인지 불분명하다. 자치통감도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적지 않았다. 원나라의 대학자 학경의 저서 속후한서에 인용된 영웅기에서는 유비가 동탁 토벌전에 종사하다가 적에 의해 격파당하니 '분위장군' 공손찬에게 갔다고 하고 있다. 분무장군과 분위장군은 서로 다른 잡호장군 관직이긴 한데 같은 급의 관직인 데다가 무(武)자와 위(威)자는 붓으로 써놓으면 얼핏 비슷하기 때문에 학경 속후한서가 인용한 영웅기의 '분위장군'이 '분무장군'의 오기라고 보면 공손찬이 분무장군을 받은건 정사 삼국지에서 나온대로 동탁이 낙양에 들어간 직후가 될 것이다. * 강유전에선 강유가 촉한부흥을 노리다 죽었다는 부분을 생략했다. 이 부분은 배송지가 한진춘추, 화양국지, 진양추 등의 사서로 보충했다. * 4차 북벌에서 결과가 논란이 많은 [[노성 전투]]를 생략해버렸다. 이 부분은 배송지가 주석으로 단 한진춘추와 진서의 선제기를 참고해야 한다. * 선주전에서는 유봉, 맹달, 이평(李平)등을 보내 상용에서 신탐을 공격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삼국지집해에 인용돤 조일청의 글에선 '이엄전에서 이엄이 평(平)이라 개명함은 후주 건흥 8년으로, 이 때는 아직 이름이 엄(嚴)이고, [[한중왕표]]의 대열에서 받들며 여전히 엄이라 하니, 대응되지 못하고 가지런하지 않음이 이와 같다. 그리고 이엄전에서 또한 신탐(申耽)을 공격한 일이 없으니, 이는 다른 사람으로 의심된다'고 하였고 반미가 이르길 '이엄은 건안 19년에 건위태수(犍爲太守)가 돼, 장무(章武) 2년에 이르러 징소돼 영안궁(永安宮)에 이르렀으니, 응당 유봉, 맹달이 상용을 공격할 때, 이엄은 계속 건위에 있었다. 촉에서 또한 두 이평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으니, 아마도 이는 군더더기 글자다'라고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