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간사우 (문단 편집) == 개요 ==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 7인을 이렇게 부른다. 여기서 삼간(三奸)이란 말 그대로 세 명의 간신배를 말하며 사우(四愚) 역시 네 명의 [[바보|어리석은 놈]]을 가리킨다. 즉 세 간신과 네 멍청이. 이들은 도조 히데키의 최측근이었으며, 전후 당시부터 패전의 원흉으로 여러가지 의미로 지탄 받았던 인물들이다. 흔히 일컬어지는 [[삼대오물]]의 구성원에 비하여는 임팩트(?)가 덜했고, 대개 전쟁에서 패전으로 일본의 패배에 일조하기보다 도조 히데키의 측근으로서 관료, 참모, 일본 본토 주재 부대장 등으로 일했던 인물들이 많기에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쉽게 비유하자면 [[삼대오물]]은 직접 뛰며 말아먹은 놈들, 삼간사우는 말아먹는 것을 지휘한 놈들이다. ~~그게 그거다~~] 원전이 불분명한 삼대오물에 비하여는 전후 당시에도 이들을 묶어서 삼간사우로 칭한 자료가 남아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이들을 '삼간사우'라는 단어로 묶어 표현하는 관련 문헌이 존재한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E5X8jFd0ji4C&pg=PA92&lpg=PA92&dq=%22%E4%B8%89%E5%A5%B8%E5%9B%9B%E6%84%9A%22&source=bl&ots=tYug3XNRBg&sig=ACfU3U136Dn4gdgeEgrXS6ZYoMnMM-7lCA&hl=ko&sa=X&ved=2ahUKEwjws_i-_9joAhWOMN4KHUtXDgIQ6AEwEHoECAsQLg#v=onepage&q=%22%E4%B8%89%E5%A5%B8%E5%9B%9B%E6%84%9A%22&f=false|링크]] 다만 삼간사우를 언급한 서적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않는 학술적인 서적이 많고, 구글 고급검색 기준으로 '三奸四愚'를 검색하였을 때 5천여건 정도만 검색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일반 대중 사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을 패전으로 이끌었으니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이들이 전후 일본사회에서 멸시당했다고 보기는 어려움이 있다. 이들 중 몇 명은 전후 직후에 사망(교수형, 옥사)하였으나, 생존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을수도 있지만) 표면상으로 전쟁기 여타 고위 관료들과 비슷하게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예를 들어서 스즈키 데이이치는 전후 산업계획회의위원으로 종사하였고 자유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출마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사토 겐료는 도쿄관재의 사장으로 근무하기도 하였고 베트남전 시기에 반전운동 활동을 하였다. 사나다 조이치로는 전후에도 제1복원성(구 육군성)에서 근무하였고 사후 부하에 의해 전기가 쓰여졌다. 가토 하쿠지로는 전후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매달 도조 히데키의 가족을 방문하였고, 아카마츠 사다오만이 전후 공직추방 가지정이 되었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