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월 (문단 편집) == 설명 ==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사서에 등장하는 민족. 백월(百越)의 한 갈래인 민월(閩越) 중에서 산 속에 숨은 사람들이 형성했다. 민월은 [[월나라]]의 후예 국가로 [[진나라]] 시기에 잠깐 중국에 복속되었지만 초·한 쟁패기에 다시 독립했고 전한기에는 명목상 제후국이었지만 독립을 유지하다가 한 무제 때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이들은 삼국시대까지도 한족과 별개의 정체성을 유지했는데, 당연히 언어도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한 언어가 아닌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이나 [[오스트로네시아어족]], [[타이카다이어족]]에 속한 언어를 썼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복건·절강·안휘·강서의 경계 지역에 출연해 주로 안휘성의 단양에서 활동했고 [[한족]]도 산월에 섞여 이러한 자들은 산월적(山越賊)이라고 불렀으며, [[종부]]라는 군사 집단을 만들어 [[후한]]이나 오나라에 저항한 자들을 산월이라고 부르는 등 [[산적]]과 산월의 경계가 애매하다. 일례로 [[엄백호]]는 정사에는 산적이라 되어 있지만, 산월족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169년 9월에 산월이 단양 태수 진인을 포위하자 격파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강동의 손씨가 강동에 자리잡으면서 이 지역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오나라]]와 열심히 싸움을 벌였지만 대체로 '토벌을 당하는' 쪽으로 오나라는 산월을 골치거리로 여기고 있었던 걸로 보아 상당한 피해를 주기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적들이 산월을 끌어들여 오나라에 대항했고 [[황개]] 등 여러 장수의 기록에서 산월 토벌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234년에 [[제갈각]]은 산월을 대대적으로 토벌했으며, 이렇게 지속적으로 토벌된 산월족은 오나라에 붙잡혀 와서 호족들에게 편입되어 [[세병제]]에 묶인 병사가 되면서 서서히 농민이 되어 수·당대 이후로는 완전히 한족에 동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