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소어뢰 (문단 편집) == 한계 == 그리고 이것이 그대로 독이 되었다.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금속부품의 산화, 부식으로 인한 산화제 누출 및 폭발사고 가능성이 커서 정비에 굉장히 공을 들여야 했다.[* 애초에 철이 녹스는 이유가 무엇인가. '''산소'''가 철과 만나서 산화 철이 되는 것이 바로 녹스는 것이다. 그런데 '''고농축 압축산소'''가 들어있는 연료통은 어떻겠는가.] 순산소가 '''독가스'''라는 것은 덤.[* [[산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산소 분압이 너무 높으면 치명적이다! 사실 영국도 산소어뢰 개발에 성공했지만 압축산소를 다루기가 까다롭고 농도를 올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거의 폐기했다.] 이만해도 지랄맞은 결함품이지만, 앞의 모든 문제를 모조리''' 씹어먹는 '''제일 치명적인 단점이자 태생적인 문제는 바로 '''[[유폭]]'''이었다.[* 제일 먼저 산소어뢰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나라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기술력을 가진 영국인데, 기술실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줄이지 못해서 폐기했던''' 무기가 이 산소어뢰이다. 산소어뢰라는 함대 차원에서 치명적일 수 있는 이 기술에 [[독일]] 또한 관심을 가졌으나, 똑같은 이유로 폐기했다.] 일반 어뢰도 유폭이나 화재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군용 폭약은 간접 피격으로는 잘 폭발하지 않으며, 연료가 샌다고 한들 단순 화재 이상은 아니다. 군용 폭약은 기본적으로 뇌관과 신관 없이는 단독으로 쉽게 폭발하지 않게 설계된다. 혹시 실수로 터지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기 때문. 불을 붙여도 천천히 타오르거나, 열심히 붙여야 붙는 놈도 있다. 그렇게 해서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 안정화해 충격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쓸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다이너마이트]]다. 하지만 산소어뢰는 산화제인 순산소가 누출되면 즉시 주변 물질과 반응해서 격렬한 산화반응(화재)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거기에 직결된 연료계통이 파괴되어 누출된 연료에 순산소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대폭발을 일으키며, 탄두를 유폭시키고도 넘치도록 충분한 충격량을 선사한다.[* 애초에 화약의 폭발원리 자체가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라, 가연물질이 연소할 때 과산화제를 분해시켜 만든 순산소를 공급해주는 것이다.] 단 한 발로도 전함도 버틸 수가 없게 만드는 물건이, 한 발도 아니고 몇 발이 발사관 채로 유폭한다면 중순양함 따위는 '''유폭하는 즉시 폭침당하거나 살아남아도 폐함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적의 사격을 맞을 일이 별로 없는 야간 뇌격 등을 시행하던 개전 초반에는 이 점이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전세가 기울고 본격적으로 [[연합함대]]가 두들겨맞기 시작하자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 결국 산소어뢰는 있어도 쓸 수 없는 무기, 아니 교전 개시와 동시에 '''최대한 빨리 버려야만 하는 무기'''로 그 이미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어뢰 발사관이나 어뢰 저장고에 대한 장갑 방어는 없다시피 했으며 그나마 유폭 문제를 [[일본군]]도 인식해서 어뢰 발사관과 저장고에 장갑을 추가로 둘러치는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중순양함같이 배수량에 여유가 있는 함선만 적용한데다가 둘러친 장갑 자체가 주포탑 장갑보다도 엄청나게 얇아서 별로 효과는 없었다. 그래도 대책은 있다. 산소어뢰가 유폭하기 전에 내다버리면 된다.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한 [[모가미급 중순양함]]인 모가미와 미쿠마의 경우, 모가미는 '''보수관 사루와타리 마사유시 소좌가 함장 쇼지 아키라 대좌를 몰아세우는 등 아예 즉결처형될 각오를 하고 모든 산소어뢰를 바다에 버려서''' 미군의 집중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미쿠마는 그러지 않았다가 어뢰 저장고에 피탄당하는 바람에 유폭으로 폐함 상태가 된 후 가라앉아 버렸다. 그 외에도 적 함선과 조우하면 몽땅 쏴버리고 유폭의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선택지를 사용하는 경우인 미국 함대와 근접 조우하거나 야간 뇌격을 걸어서 산소어뢰의 위력을 뽐낼 수 있던 것도 잘 해봐야 대전 중반기까지였고, 후반기쯤 되면 이미 '''미국 함대와 마주치기도 전에 벌떼같은 미국 함재기들에게 둘러싸이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쓰지도 못한 산소어뢰를 선내에 쌓아두고 있다가 유폭 당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때문에 대전 후반기의 중순양함 이하 모든 일본 함선들은 미국 함재기들이랑 마주치면 함장과 장교들의 목이 날아갈 것을 각오하고 산소어뢰를 몽땅 버리든가, 끝까지 가지고 있다가 유폭으로 격침당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어뢰를 버리는 일이 목이 날아가는 일이 되는 것은 애초에 어뢰란 무기가 비싸고,[* 미국에서 [[어뢰 스캔들]]이 터진 원인을 보면, 예산 문제로 인해 어뢰에 실제 탄두 장착을 해서 시험을 하면 비싼 어뢰를 시험용으로 낭비한다고 생각해서 실제 탄두가 아닌 물을 넣고 사격시험을 하거나 실제 전투에서 문제를 일으킨 자기기폭장치의 신뢰성을 확신하는 등, [[QA]]/[[QC]]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정상 산소어뢰의 제조가격은 더 비싸므로 비용문제도 있을 뿐더러, 어뢰를 버린다는 것은 사소한 위협에 적극적인 돌격을 포기하고 제 살길만 찾겠다는 비겁한 행위로 치부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입수 시 [[자이로스코프]]나 신관의 오작동 문제가 커서 항주 중 진로가 틀어지거나 저절로 [[자폭]]하는 결점도 있었다. [[자바 해전]] 문서와 [[나치(중순양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1차 자바해전과 순다해 해협 해전, 2차 자바해전에서 일본군이 쏜 산소어뢰는 188발인데 명중탄은 4발이었다. 신관이 지나치게 민감해서 항주 중에 파도만 만나도 자폭하는 등의 기계적 결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산소어뢰가 비싸다는 이유로 장거리 발사를 실제로 해본 적이 없기에 벌어진 일이며, 이후 일본군은 장거리에서의 어뢰 일제소사를 자제하게 된다. [[중뇌장순양함]]이 존재가치를 잃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라고 어뢰 때문에 뒷목을 안 잡은 곳은 없어서 [[어뢰 스캔들|개전 초중반 시기의 미 해군이 쓰던 어뢰는 저런 문제들이 사소하게 보일 수준으로 치명적인 문제들을 겪고 있었고]] 독일의 어뢰도 신뢰성에 문제가 많아서 [[아크로열]]을 공격한 [[유보트]]는 어뢰가 조기 폭발하는 바람에 들켜서 격침 당했다거나 넬슨을 공격한 유보트가 어뢰의 문제로 격침에 실패하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등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유폭 때문에 망한 곳은 일본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