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산가지 (문단 편집) == 사용 방법 == [[파일:산가지 사용법.jpg]] 산목으로 수를 나타내는 방법은 자릿수를 번갈아가며 가로놓기와 세로놓기로 구분하여 숫자를 표기하였다. 즉, 세로놓기로는 일, 백, 만 등 자릿수의 숫자를, 가로놓기로는 십, 천, 십만 등 자릿수의 수치를 나타내었다. 경우에 따라 가로놓기와 세로놓기의 자릿수를 서로 바꾸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13세기 송나라 말까지는 0을 나타내는 부호가 없었으므로 0에 해당하는 자릿수의 수치는 비우고 표기하였다. 동양수학에서 일찍부터 발견되어 사용된 음수를 표기하기 위해 양수는 붉은색, 음수는 검은색으로 구분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수는 마지막 산목을 비뚤어지게 놓아 구분하기도 하였다. 산목은 산학이 체계화되는 고대로부터 비교적 근래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주판]]이 보급되면서 사라졌으나, 한국에서는 산학의 기본적인 계산방법으로 조선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예를 들어,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엔 조 씨 가문의 당주 조의관이 평생 동안 주판과 산가지만 끼고 살았다는 묘사가 있는데 이로 볼 때 20세기 초반까지도 주판과 더불어 계산용 도구로 널리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중국에서는 주판이 보급된 반대급부로 [[명나라]] 들어 [[방정식]]이나 유한 [[급수]]이론이 [[원나라]] 이론이라고 꺼리다가 실전되어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방정식을 풀기에는 훨씬 수월한 산가지를 고집해 방정식론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물론 단순계산에는 산가지가 주판보다 많이 뒤쳐짐이 사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이후로 한국에도 주판이 보급되어 [[주산]]을 가르치는 경우가 늘어났고[*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곳곳에 주산학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후엔 전자 계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이젠 고대의 [[유물]]로만 남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