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회성 (문단 편집) ==== 경험 부족 ==== 성장과정에서 대인기술을 적절하게 습득하지 못했거나 지식을 많이 배웠는데 실천해보지 못했거나 대인기술 비롯한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봤어도 많은 경험을 쌓지 못해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배려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타인의 감정을 노력해서 파악하려 하지 않는 것, 쉽게 공격적으로 되고 화내는 것, 성격이 급한 것' 등을 사회적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문제조차도 경험 부족의 원인이 크다. A는 취미도 단조롭고, 여행도 거의 가지 않는 무직자라고 하자. B는 같은 기간 동안 친구를 많이 사귀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자. 이 와중에 갈등을 해결하기도 하고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게 된다. 운동이라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격투기나 구기운동 종류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습이 되며 반대로 혼자서 하는 운동인 줄넘기, 수영 같은 건 운동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사회성 함양에는 큰 도움은 주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5년에서 10년 정도 '''누적'''되면 사회성에 있어 큰 차이가 나게 된다. 환경 차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잘 대접받는 폐쇄된 집단'''에만 머물러서 생기는 경험 부족도 원인이 된다. 갑의 입장에서만 살아오면 적응하기 쉬우므로 누구나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 자기 집단 안의 사람들은 문제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사회성의 문제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의 변화로 을의 입장이 되고 [[자존심|개인적인 이유]]로 비위를 맞추는 법을 습득하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상황대로 해석하고 이는 어린시절 지내온 환경에 따라 누적된다. 한쪽이 굴곡이 적은 유순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면 인격 모독성으로 느껴지는 발언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따끔한 조언으로서 한 말인데 이게 그렇게나 감정이 상할 일인가?'라며 당황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실제 피해를 과장되게 체험하여 이의 억울함을 항변해봤자 이익이 없다고 판단해 수용당한 것을 스스로가 정상으로 납득시켜야지 과거의 트라우마가 진정되거나 간접적인 투쟁[*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분노를 상대에게 투영시켜 나오는 거부반응에 동질을 느껴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에 의한 방어기제가 원인이 된 것으로 그나마 긍정적이라면 감정노동에 익숙해지는 것이겠지만 외부에 강요하는 건 다른 문제이고 반대로 심리적 안정을 위해 무심해지는 영역을 확장하다가 사회적 합의에 위배되는 선을 넘어 극단적인 내 편 편향으로 [[사이코패스]] 수준의 무관심을 보인다고 오해할 수 있다. >(기운이 없는 A에게서 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을 듣는다) >B: "안 됐다. 힘 내 ㅠㅠ." >C: "그건 니 사정이잖아." >D: "근데 오늘 점심 뭐 먹지?" 개개인의 모종의 사유로 이루어진 직장에서는 개인 사정과는 별개로 생산성에 기여하기 위한 화제에 집중해야 한다. 감정 쓰레기통이 돼 줄 만큼 돌아오는 게 없다면 굳이 억지 공감을 해 줄 이유는 없으며 위 예시의 대화 중 건조한 반응을 보이는 상대에게 경험 부족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역으로 본인의 사회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친구라 해도 별 다르지 않은데, 혹여나 A와 같은 상황이 본인(B)에게도 닥칠 수 있으니 공감은 해줄 뿐 이후 대개 손절 대상으로 놓는 건 같다. 이외에는 위로를 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계이거나 공통된 윤리 신념을 지닌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문제라고 지적될 만큼 무심하다면 A를 향한 공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공공영역에 불필요한 자기 공개를 들먹이지 말라는 취지일 뿐 악의가 없음을 변호할 수 있다. D의 경우에는, 사정을 받아줄 정도로 본인의 심리적 안정을 유지할 여유가 없거나 이로 인해 생기는 주변의 피해가 더 클 것을 고려하여 무관심을 습관화하는 게 개인에게는 더 현명한 선택이고 굳이 비판할 게 있다면 C와 비슷하게, '주변 인물이 어떻게 되든 말든 나랑 상관이 없다'라는 걸 말로 표출해서 발생되는 후환을 막기 위한 보험(공감)을 유지하여 얻는 잉여분까지는 내다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가 의연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본인의 무관심을 '밝히는' 언행을 역공감해 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지적할 수는 있다.] 첨언하면, '''약점을 공언하는 건 장기적으로 득될 게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며 '이 말은 도의적으로 절대 하지 않을 것임을 상대도 알고 있으며 나와 같은 생각을 거칠 것이다'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게 그나마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다. [[역린 #s-2.1|역린]]을 아는 사람이 적이 되면 가장 무섭고 온라인에선 더욱 추접스럽다. [[외아들|외동아들]] 또는 [[외딸|외동딸]] → 갑을관계나 강요 따위 없고 대외활동을 거의 안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 이와 반대의 케이스가 있다면 어머니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친구의 어머니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정도로 친하고, 아버지는 개인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신도 사회적 스킬을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들 중에는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들한테 어떻게 해야 상대방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주지시키는 케이스도 있다.] → 집단괴롭힘 없는 중고생 시절 → 권위의식 없는 평등한 대학 생활 트리를 거치면 나중에 군대나 직장 등 서열 의식, 상급자에 대한 허례허식과 복종 등 똥군기를 마주치거나, 사악하고 교활한 사람을 만날 때 잘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 [[인턴]], [[동아리]], 동호회, [[자원봉사]] 등 을의 입장에서 많은 경험을 하면 나아진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혜안을 얻는다고 생각하여 "나는 사회성에 문제가 없다. 갈등이 생기는 것은 어린 너의 탓이다."라고 책임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알고보면, '나이든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무례하다'라는 인식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똑같은 잘못을 해도 욕을 적게 먹는 게 원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꼰대]]나 [[오지랖|오지라퍼]]가 되지 않으려면 [[나일리지]]만 믿지 말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사회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공간을 침해하는 경우(예: 금연구역에서 친목을 위한 흡연) 시행자가 나이가 젊어도 상대가 예민하다 받아들일 수 있고 현 세대와 다르게 배운 인식 차이로 인해 무개념이 된 경우로는 과거 대중교통 내 흡연처럼 유해성에 무관심하여 어린아이나 신생아 옆에서 [[거리 흡연|길빵]]해 간접적으로 영역을 침해당하는 보호자 입장에서 예민해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하며 이는 행위를 연상하는 전자담배 역시 동일하다. [[음주운전]]도 [[회식|단합의 일환]]으로서 용인됐지만 현재는 살인미수 격으로 인식이 나락으로 떨어진 파렴치한 행위이다. 사소하게는 무논리로 우기거나 고함지르기, [[노크|예고]] 없이 문을 여는 행위가 있다. 서류 던지기도 창작물에서나 풍자하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어 법의 발효 역시 경험의 실효 명분에 포함된다. 남아 성추행 중 고추 만지기의 경우 과거에나 귀여운 공격성(cute aggression)[* [[귀엽다|해하고 싶은 욕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기에게 "어흥.", "이 노옴~."하면서 공포를 주입하는 개념이다.]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성 인식이 개선되고 난 후 노년이라도 범죄로 인식하는 분위기이며 미디어에서도 찬반을 다루지 않는다. 그밖에도 본인의 습관으로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https://gall.dcinside.com/dcbest/71223|#]] * 대인기술이 떨어지고 * 대인기술을 갖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으며 * 경험 부족에서 온다는 생각이 들면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등 [[취미]]를 갖추는 게 좋다. 분명한 것은 소극적이고 대인기술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냥 우연히 아무 노력 안했는데'''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시 낭인]] 등 일반적인 사회에서 오래 떨어져 지내도 경험이 부족해서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 [[집단괴롭힘]] 피해자의 경우 만날 사람 자체가 제대로 생길 수가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경험 부족이 되어버린다. 단 좌절이나 트라우마로 경험 부족이 생기는 경우는 극복하기 위한 자기 개발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식]] 부족''' 역시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간혹 사소한 것 차이로 평가가 갈리는 것도 [[화법]]이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자기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고 직접 경험을 해보면서 지식을 쌓으면 보완이 가능하다. 고객서비스교육(CS), [[객실 승무원|스튜어디스]]/스피치/연기 학원[* 연예인 지망생만 가는게 아니다. 연기를 배우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지 배우기도 한다.] 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남을 기분 나쁘게 하는 언행의 경우, [[반면교사|기분나쁜 사회인]]을 만나는 경험이 많을수록 좋아진다. '저 사람이 나에게 저런 식으로 대하니까 기분이 나쁘다, 내가 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한적이 있는데 그 사람 진짜 기분 더러웠겠다,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 같은 식의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좋아진다. 인터넷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도 [[아싸|아싸화법]], [[찐따|찌질한 사람]] 탈출법, 사회생활 비롯한 지식과 간단한 요약 등으로 빠르게 이해시킬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서로 얘기해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현실 대화와 마찬가지로 반면교사가 있기에 너무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가야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보는 게 좋다. 대다수가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워마드같은 질 안 좋고 극단적인 커뮤니티에서 사실인 것마냥 무조건 자기잘못, 성차별, 자기 혐오 등을 넣는 혐오성 등을 배출하는 내용과 유머가 많이 돌아다니고 있기에, 철 많이 들 정도로 판단(눈치)이 좋은 사람이 아닌 이상 일단 '간섭하지 말자', '경우가 있고 확실하지도 않으니 일단 중립이나 관심없는 것처럼 넘기자'와 같이 '''맥락을 지닌 판단'''을 가지면서 보는 것이 좋으며 법, [[심리학|심리]], 철학에 대해 공부하여 사회적 변수를 추론하기 어려울 때마다 스스로의 교차검증을 거쳐 '왜 상대는 그러한 언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란 빅데이터를 학습해 수(手)의 확장과 의식적 공감을 통한 연역을 중립적 시각에서 고려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넓혀야지 본인의 사상을 존중받을 수 있다. 더불어 돈도 있어야 인간의 습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심리적 여유도 생기며 군중에서의 불완전한 신뢰를 사회 전체로 해석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밑바탕이 완성된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불문율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며 책으로도 배우기 힘든 편이지만, 30대 이상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모르거나 지키지 못했을 경우 가르치거나 고쳐 줄 사람은 없다. [[막장 부모]]의 교육법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잘했을 때 자녀를 칭찬하는 건 바로 그 자리에서 실시하고,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는 무엇 때문에 혼내는 것을 당연히 알려줘야 하며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올 때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잘하는 일은 계속해서 잘하고 못하는 일은 해결책을 찾아서 고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반대로 해서 잘 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것은 누구나 하는 건데 뭐 잘났다고..."라고 핀잔을 주고 못 한 일에 대해서는 "이런 것도 해결 못 하니?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 내야지."하고 타박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아이는 바보가 된다. 가정 간의 화목을 핑계로 다른 사람을 못 만나게 하는 경우에도 생기며 이는 보통 잘 사는 집일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과거 학업 경쟁력이 심했던 90년대 후반과 10년대 초반에선 부모가 아이에 대한 교육에 대해 관심이 적거나 잘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공부만 시키는 경향 때문에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학생들이 많았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사회성 공부보다 입시 위주로 공부를 시킨 탓에 자식의 다양한 사회 경험을 실천하는 게 불리할 정도로 생각을 짧게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했다. 그때도 사회성 공부를 시키긴 했지만 대부분이 초등학교 고학년~고등학교로 이루어져 있는 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데다 당시 집단주의 문화로 이루어진 사회정서의 영향을 받은 부모가 지배적이었다.] 이해 과정을 고립시키는 건 자칫 도덕의 발달을 저해시킬 수 있다. 단적으로, '사람을 왜 죽이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에 "당연히 안 되지!"라고 감정을 호소하는 건 '''왜''' 라는 물음을 해소해야 하는 입장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법에 저촉해서 오는 이득보다는 손해를 입는 방향으로 부조리의 원리를 해석해주면서 이미 본인을 압도한 사회인이 정한 윤리의 사각지대까지 올라갈 확률은 극히 적다는 것을 암시해 줘야 후에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선행을 하게 유도시켜 사회 전체적인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안 알려주고 쉬쉬하는 무책임한 훈육보다는 포괄주의적 해석으로서 비록 연기일지라도 관찰자인 미개인에게 이타적 선례를 보이는 숙주 역할을 자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러한 근거는 문제 해결을 위한 실익이 근소히 앞서게 되는 것과 동치된다. 이와 비슷하게, 세상의 나쁜 요소. 즉 부정은 전염되므로 좋은 인간관계를 꾸미려면 이를 멀리해야 할수록 좋다는 건 어린 시절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성인기 이후에도 이해 과정이 끊기는, 쾌락만을 위한 관계주의를 지향하고 주변의 문제를 쉬쉬하기만 하는 온실 속 화초는 나중에 본인의 평판이 꺾일 시 그 문제점을 자각할 수 없다.[* 예시로, 과거 한국의 [[성교육]] 과정의 미비와 더불어 가정에서도 쉬쉬하면서 발생하는 의문을 유아 입장에서 자생이라고 과장시킨 집단을 통해 해소하게 되므로 이로서 얻은 고정관념은 신생이 정한 인식의 재정과는 왜곡되어도 과거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부정시키려 드는 일부 집단이 재정의한 멸칭에서 사회 전체적 불신으로 확장하여 오는 반발 심리로 인하여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존하기만 해서는 독립심을 꾸릴 수 없고 이는 관계주의적 망령으로 자기합리화 속 타인의 의도를 추론하려는 부정적 경험을 재차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행복 회로에 중독돼 잘못된 방향으로 자아도취를 하는 노예가 되기도 한다. [[귀국자녀]](어릴 때 해외에 장기간 거주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이)의 경우에도 관용어 사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미성숙으로 인해 타의로 상향된 사회관을 선망하도록 세뇌당해 추후 성인기가 되면 기존 상식이 박살나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소속된 영역이 정한 사회 부적응의 이미지를 제3자가 '인식'한다고 여론을 조작. >→ 필요 이상으로 관음하게된 관찰자를 통해 개인의 장애 요소를 공언화. >→ 주류에 의한 사회성 부족의 객관성 보충. >→ 자조적인 사회 부적응자의 결과물을 영역 외 불특정 다수에게 동일시. 이러한 과정은 다수의 경험이 요구되지 않는 폐쇄된 집단에서 쉽게 발생하며 타인을 장애인으로 매도하는 행위로 오는 법적 자율성을 깨닫는다면 매우 치밀해진다. 일반적으로 현대인 관점에서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장애화시켜서 얻는 이득이 없기에 이러한 이유로 사회성이 없다고 타박하는 건 시간 낭비로 판단하여 열을 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도덕적 인식보다는 학업에 집중하는 것이, 출세 강요를 시간 낭비라고 인식하는 세대 차이의 문제보다는 어린 치기로 이해하는 게 이성적이어야 하는 관찰자의 한계처럼, 피해자(장애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이성적이지 않은 상황을 억지로 정상의 기준에 맞게 비교하여 피해자의 사회성 부족을 정의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니가 멍청한 거(=사회성이 없다) 아닌가?"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니 or 니들이랑은 다르게 타고 낫으니 운이 좋은 것(=사회성이 좋다)이다." 또한, 이는 확률에 의해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사회성을 대변하려는 오류를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에게는 예지력이 없지만 정상인(사실상 본인들 기준)이라면 이를 [[미신|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확률로 발생된 우연을 실수라면서 이러한 이유로 비정상인이라 믿는 미성숙 상태에서 확률을 조정할 능력이 없는 자신을 사회 부적응자로 받아들이고 이내 정신적 무기력으로 탈진하여 자아를 조작당한다. 이를 성인으로 비유하면, 맥락 없는 성공팔이로 지적 허영심을 과장시킨 유사 심리학에 의한 책장만이 '나는 남들과는 다를 것이다'라며 본인은 성숙하기에 성공 확률이 높다는 근자감에 빠진 우매한 청개구리들에게 넘겨지는 것과 비슷한 꼴이다.] 개성 역시 그 집단 내 개그 코드가 맞았기 때문에 무리에서 규정한 인간다움을 인정받으려면 재치와 비슷하게 창의성을 요해야 하는 것은 같으며 전체의 이상향을 가장한 이상점을 증명하는 문화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고 정보 불균형이 심화되어 사회 부적응자가 발생하게 된다. 이때 친목 욕구의 균형을 위해서 불법에 접근하면 [[비행 청소년]] 루트로 들어서게 될 수 있다. 이는 사회화 과정이 단순히 보호자의 사회성이 좋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식 부족을 악용하여 정보를 접하기 힘든 미성숙 상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을 통해, 정보력 약자인 당시를 고려하여 나에게만 책임을 몰아놓는 건 부당한 처사라고 은연 중 압박하여 피해자 또한 문제가 있다고 책임을 분담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폭력 가해자가 "장난이었는데 친구(=피해자)가 고통스러운 걸 __몰랐다__(=약자화). 선처해달라." 식으로 아웅하여, '우리들과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다'와 같이, 놀아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피해자를 사회 부적응자임을 다수에게 암시하여 항변하기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협작으로 비유하면 된다. 문제는 이를 계도하지 않고 자라난 성인이 주류가 된다면,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자만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당 문서 내 서술된 문제를 타인에게 주입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메타인지하는 과정을 단순 '사람을 많이 알고 주변 사람에게 충분히 친하게 보이는가?', '자신의 면책이 소속(조직)으로서 증명되는가?'로 그 정의를 대신하는 미성숙한 사고방식을 신세대들에게도 이러한 왜곡된 사회관을 퍼트리는 등 유아화로서 자유분방을 모토로 삼는 특이점이 사회에 만연해진다면, 세대 간의 격차를 틀어지게 만들 혐오 컨텐츠를 양산하는 도식화로 인해 사회적인 인식 차이에서 시작하여 일반적인 사회성의 정의마저 차등화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https://m.bobaedream.co.kr/board/bbs_view/strange/3202597|일렬횡대]], 1인 다(多)석, 취식 등 비매너는 맞는데 뭐라 하기엔 쫌생이가 될 것 같은 껄끄러운 상황 역시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본인 위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선천적으로 전두엽 발달이 더디거나 [[아동 학대|학대]] 또는 정말 사랑만 받아서 공감능력을 배우는 경험이 미흡한 게 주 원인이며, 배려해봤자 돌아오는 게 없다거나 되려 순진하다며 독하게 살으라는 쓴소리에 각성하여 주변 시선에 무덤덤해지는 등 경험적인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문화에 따라서도 그럴 수도 있지 않냐는 것에서부터 [[무개념]]으로 찍히기까지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이런 것들은 따져봤자 시간을 보상받지 못 하므로 실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행동을 지적하는 것도 언뜻 보기엔 자기 예언성 기우로 취급받는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 적절한 단어 선택과 사용법, 적절한 비유 및 표현을 쓰는 것도 사회성에 있어 중요한 경험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