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북사건 (문단 편집) === 언론의 행태 === 언론은 사북사건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4월 24일자 전국 일간지에는 사북사건의 폭력성을 매우 부각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신문들의 기사제목도 '공포의 탄광촌', '사북광부폭동 치안마비' 등이었다. 사진도 지부장 아내의 린치 사진과 부서진 건물이나 차량을 찍은 사진을 썼다. 그리하여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처럼 단정했다. 이는 아마도 신군부의 검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계엄이 선포되면 그 기간 동안 언론은 검열을 당했다. 한 달 후 5.18을 보도한 언론들의 논조를 잘 생각해보자.] 하지만 사북사건의 원인을 점검한다던가, 경찰에 의해 광부가 차에 치인 사건이던가, 무차별적인 폭동은 아니었다던가, 사건 이후의 고문수사와 가혹행위를 폭로한다던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사실로부터, [[강준만]]은 자신의 저서에서 "사북항쟁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이미 그 때에 언론기능이 죽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중앙일보> 기자 탁경명에게 가해진 모진 폭력은 벌써 서울의 민주언론인들에게도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현대사산책 1980년대편> 제1권,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03, 87쪽]고 말했다. [youtube(eBorbUviCFc)] 사북사건이 있고 난 뒤의 후일담을 보도하는 대한뉴스 영상이다. 58초부터 "4월 소요사태" 라고 언급하며 나타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