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바하/해석 (문단 편집) === 짐승이었으나 깨달음을 얻어 미륵이 되었다. === 이금화([[이재인(배우)|이재인]] 扮)의 쌍둥이 언니인 '그것([[이재인(배우)|이재인]][* 1인 2역.] 扮)' 역시도 짐승으로 태어났다. 이미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쌍둥이 동생 금화의 다리를 갉아먹는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악의 기운을 주변에 물들여서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까지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사천지왕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 부모님을 모두 죽인, 짐승이었다. 그런데 김제석의 대역은 ([[정동환]] 扮)은 '짐승 역시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천지왕과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태어난 쌍둥이 언니인 '그것' 역시도, 앞으로 어떤 행위를 하는가에 따라 부처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역설적인 단서가 된다. '그것'은 새로 이사 온 시골 마을에서도 주변의 소들을 모두 죽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16년 동안 끊임 없이 악의 기운을 퍼뜨려 왔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악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지국 김철진의 범죄 행위가 세상에 드러나 지국이 자살을 하게 되고, 지국의 전업(금화를 죽이는 일)은 광목 정나한이 이어받았다. 정나한은 교육청 공무원이자 광목천왕을 섬기는 법당의 연화보살(오윤홍 扮)을 통해서 금화의 주소를 알아내어, 금화를 죽이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것'은 광목이 방문한 의도를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광목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금화를 지키기 위해 새떼를 집안으로 불러들여서 광목을 저지한다. 이 장면은 아주 불길하고 음산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인 악으로 보였을 때에는 '그것'이 악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알게 되고 다시 본다면, 쌍둥이 언니인 '그것'은 뱃속에서 동생의 다리를 갉아먹은 이후에는 결코 동생에게 해코지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분명 악이 깃든 채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광목에게서 동생을 지켜줬던 것처럼, 그리고 김제석에게 속아서 악행을 저지르며 괴로워했던 광목(나한)에게 광목의 엄마처럼 나타나 매일 밤 자장가로 위로해줬던 것처럼, '그것'은 16년 동안 계속해서 자신에게 깃든 악과 끊임 없이 싸워왔을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악하게 태어났는가. 무엇이 이리도 날 고통스럽게 만드는가. 그리고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원리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것은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수행자들이 수행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아주 흡사하다. '그것'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내내 '그것'이 내지르는 괴성과 울부짖음은 우리에게 [[악마]]의 비명으로만 들린다. 하지만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그것' 역시도 악이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매일 밤 내질렀던 괴성은 '그것'이 16년 동안 계속해서 이어왔던 고통스러운 수행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를 다시 방문한 티베트 밀교의 대승인 네충텐파는 법단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그 수행 중에 얻은 경험으로, 나는 고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이게 아주 중요한 대사라고 강조하듯, 굳이 자막으로 번역되었던 이 대사를 해안 스님의 통역을 통해 곧바로 반복해서 들려줬다. 불교에서 수행은 고통의 과정이다. 육체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모든 욕망과 집착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깨달음에만 정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수행의 고통은, '그것'에게도 존재한다. '그것'은 짐승으로 태어나, 자신의 본성이 주변에 끊임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목도해오며 고통 속에서 16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1999년으로부터 16년이 지난 해의 [[크리스마스]]에 '그것'을 농약으로 독살하고 집을 떠나려고 했던 동생 금화가 마음을 바꾸며 돌아와, 농약이 섞인 밥그릇을 차버린 뒤에 추위를 막아줄 스웨터를 벗어준다. '옷을 벗어주는 행위'는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메타포인데, 김제석의 대역이 김제석의 사천왕으로 점찍고 입양한 네 명의 소년범들에게 자신의 흰 도포를 벗어주는 것, 최후에 박웅재 목사가 죽은 광목에게 자신의 코트를 벗어주는 등, 종교적인 맥락의 메시지(사랑, 구원)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쌍둥이 언니인 '그것'은 16년간의 모든 고행을 끝내고, 드디어 욕망과 집착으로 인한 번뇌를 모두 내려놓게 된다. 그러자 옷처럼 덮혀 있던 털들이 벗겨지고[* 김제석은 '그것'을 죽이기 위하여 집을 떠날 때부터 영화가 끝나기 까지 털이 수북한 코트를 입고 있다. 털을 벗겨낸 '그것'과 스스로 털옷을 입는 김제석의 모습이 대비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깨달음을 얻은 뒤에 '그것'이 땅을 파내서 발견한 것이 빛을 만드는 [[라이터]]였다는 사실은, 결국 '그것'이 [[여래]]의 빛을 얻은 부처가 되었다는 암시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살아 있는 등불을 자처했던 김제석이, '그것'이 발견한 깨달음의 빛인 라이터에 의해 말 그대로 불타는 등불이 되며 최후를 맞이하는 엔딩에서 결국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살아 있는 미륵은 이제 김제석이 아닌 '그것'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천하의 악인이기는 하나, 그리고 환경과 시간이 허락하는 막을 방법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고는 하나, 미륵불이 각성의 순간에 발견한 것이 살생을 위한 도구인 데다 그걸 주저없이 쥐여준다는 아이러니도 있긴 하다. 그래도 김제석이 본래 몹시 선하고 위대했던 인물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번뇌에 휩싸여 악하지 않은 자가 사리분별을 못하고 악행을 마구 저지르는 상황을 저지하여 준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살생이 아닌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광목이 김제석의 목을 조르며 차가 전복될 때, '그것'이 김제석의 예언서의 내용을 직접 읊는데[* 슬픈 눈이 뱀의 목을 비틀 것이고, 모든 것은 뒤집혀 땅은 하늘이 되고, 하늘은 땅이 될 것이니, 제자여, 뱀의 발을 잡으라.], '그것'의 마지막 말씀은 자신의 유일한 제자인 광목의 손으로 이뤄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