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무엘기 (문단 편집) ==== 본문(1~20장) ==== 본거지를 습격하여 자신들의 재산과 가족들을 약탈한 아말렉 사람들을 쫓아가 죽이고 빼앗긴 것 모두를 다시 찾은 뒤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온지 3일째 되던 날, 사울 진영 소속 아말렉 소년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아말렉 소년은 죽음을 애도하는 자세를 하고 있었고, 소년의 증언을 들은 [[다윗]]은 처음으로 [[사울]]과 [[요나단(사울의 아들)|요나단]]의 죽음을 알게 되는데, 이 소년 병사는 자신이 큰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사울 왕을 본인의 요청대로 죽였다고 보고했다가, 기름부음 받은 왕을 시해한 죄로 처형된다.[* [[사울]]은 죽기 전에 필리스티아 병사들에게 모욕당하고 죽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죽여달라고 옆의 부하에게 부탁했지만 부하가 꺼리자 [[자살]]했고, 그 옆에 있던 부하 병사도 그 광경을 보고 따라 자살했다. 보통 신학 쪽에서는 이 소년 병사가 헛된 공명심을 품고 거짓 보고했다가 스스로 자신의 신세를 망친 것으로 해석된다.] [[다윗]]은 [[사울]]과 더불어 가장 친한 인물이자 자신을 알아준 은인 [[요나단(사울의 아들)|요나단]]을 추모하는 활 노래를 지어 백성들에게 부르게 했다. [[야훼|하느님]]의 명으로 헤브론에 올라간 [[다윗]]은 나이 30세에 유다 지파에 의해 유다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사울]]의 군장인 아브넬과 나머지 11지파는 마하나임에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역대기]]에서는 에스바알로 나오는데, 이는 이름에 [[바알]]이 들어가는 구절에 대해 '보셋'이라는 욕을 넣은 후대 기록자들의 가필이다. [[바알]]은 [[중동]] 지방의 토착신 중 하나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곧잘 [[야훼|하느님]] 대신 섬기곤 해서 [[야훼|하느님]]의 분노를 사곤 했다.]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게 되는데, 2년 만에 이스보셋으로부터 아버지 [[사울]]의 [[후궁]]과 동침했다고 추궁받은 아브넬이 열받아서 [[다윗]]에게 전향했다. 그러나 아브넬은 곧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예전 싸움에서 그가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 다윗이 자랑하던 30인의 맹장중 한 사람으로, 발이 노루처럼 가벼워 달리기를 잘했다고 한다. 전투에서 후퇴하는 아브넬을 발견하고 그를 추격하는데, 역시 발이 빠른 장수 답게 아브넬을 곧장 뒤쫓아온다. 도망치던 아브넬이 "야 너 허튼짓하다 죽지 말고 딴데 가서 적당히 전공이나 챙겨라. 내가 너 죽이면 니 형 요압 얼굴을 어떻게 보냐"라고 하지만 당연히(?) 아사헬은 씹고 계속 쫓아왔고, 결국 아브넬이 기습적으로 찌른 창 뒤끝에 찔려 사망(...). --발이 워낙 빨라서 아브넬이 창 뒤로 찌를거라고 생각을 못한듯-- 아브넬은 원래 아사헬을 죽이지 않고 밀어내려고 했는데, 아사헬이 너무 빨라서 창 뒤끝에 달린 쇠에 배가 관통되어 버렸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을 살해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넬의 아들 아브넬이 피를 흘리고 죽었으나, 나와 내 나라는 영원히 야훼께 죄받을 일이 없다. 그 죄는 요압의 머리와 그 가문에 돌아갈 것이다. 그 집안에는 성병환자, 문둥이, 물레질이나 할 자,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을 자가 끊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을 한다. 아브넬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이스보셋도 곧 암살당해, [[다윗]]에게 대항하던 세력은 와해된다. 암살자들은 이스보셋이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배를 찌르고 목을 베어 [[다윗]]에게 가지만 '''악인이 의인을 침상에서 죽였다며''' 사형에 처하고 사지를 잘라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다.[* 사울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서부터 아브넬과 이스보셋에 이르기까지 다윗이 이렇게 정적에 해당하는 사울 측 인물들을 관대하게 평가하고 심지어 칭송까지 한 이유는 다윗 본인이 그렇게 관대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잔존해 있는 잔당 세력들을 포용하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로마의 카이사르도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의 사망 후 완벽하게 똑같은 행보를 보였고, 이런 모습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흔하다. 더구나 부인도 사울의 딸이었던 만큼 정치적 당위성도 있다.] 이스보셋의 머리는 아브넬의 무덤에 합장하고 장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이스보셋이 죽은 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나아와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데, 헤브론에서 5년 6개월을 더 머물다가 [[예루살렘]]을 빼앗고 다윗성을 세운 뒤 천도하여 33년을 더 통치, 총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다윗]] 성으로 법궤를 가져온 후 성전을 지으려고 시도하지만 [[야훼|하느님]]이 거부하여[* 대신 [[솔로몬|다윗의 아들]]이 [[야훼|하느님]]을 위한 집(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역대기]]상에는 [[다윗]]이 전쟁으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아들 대에 짓게 된 거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신 성전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을 차곡차곡 잘 모아놓았다.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에돔]]에서 [[유프라테스 강]] 상류 및 [[시리아]]까지 확장, 대왕국을 건설했지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NTR]] 사건[* 레너드 코헨이 처음 부르고 이후 제프 버클리가 리메이크한 <[[할렐루야]]>의 첫 2절까지가 [[사울]]의 시종이었던 [[다윗]]의 이야기와 그 [[다윗]]이 밧세바에게 매혹당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이후 [[삼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후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말년에는 삼남 압살롬의 반란과 죽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요압이 개의치 않고 압살롬을 [[끔살]]. 사실 압살롬이 이전에 여동생 다말이 다윗의 장남이자 맏형인 암논에게 강간당한 일로 앙심을 품고 암논을 죽이는 사고를 쳐서 있어서 다윗의 눈 밖에 났는데, 군사령관 요압이 다윗왕과 압살롬 왕자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해서 그 관계가 어느정도 회복된 일이 있었다. 그랬는데 결국 반란을 일으켰으니, 요압 입장에서는 압살롬에게 빡이 쳤을 수 있고, 또 과거에 압살롬을 두둔했던 일로 압살롬의 반란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질 것을 염려해 왕의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압살롬을 죽여서 과잉 충성을 보이려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베냐민 지파 사람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압살롬의 장수였다가 다윗에게 발탁된 아마사가 죽는 일[* 이 일도 요압이 한 일인데 아마사는 요압의 이종 사촌이었다.] 등으로 큰 심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