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리사 (문단 편집) == 사리사의 몰락 == 지중해에서 꾸준히 세력을 형성하던 [[로마]]는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되고 그중 '''[[키노스케팔라이 전투]]'''(Battle of Cynoscephalae, BC 197)는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와 로마의 레기온의 대조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 전투로 기록된다. 여기서 산을 사이에 두고 행군중이던 마케도니아군과 로마군은 서로 산 너머에 적이 있다는걸 알고 급히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마케도니아군 우익은 진형을 편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마케도니아군 좌익은 험한 지형 때문에 전형 편성이 늦어지고, 로마 레기온 우익은 진형이 편성되지 않은 마케도니아군의 측면을 강타하며 밀어붙였다. 그러나 진형이 편성된 마케도니아군 우익을 상대하는 로마군 좌익은 무시무시한 오티스모스에 밀리기 시작했고, 산 정상에서 시작된 교전이 산기슭까지 밀려 탈주병이 발생할 때 즈음 마케도니아군 좌익을 패퇴시킨 로마군 우익이 방향을 전환하여 마케도니아군 우익의 후방을 강타, 결국 마케도니아군은 완전 패배하게 된다. 중장화된 페제타이로이는 강력했지만 그만큼 느렸고, 결국 로마군 우익이 마케도니아 좌익을 돌파하는 속도가 페제타이로이가 로마군 좌익을 무너뜨리는데 필요한 시간보다 빨랐던 것이다. 거기다 마케도니아 지휘관들의 기량도 떨어졌다. 이 전투를 통해 두 가지 양상을 한 번에 알 수 있는데 곧 로마 레기온은 전열이 갖추어진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를 정면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과 로마군의 지형 적응성이 뛰어난 점, 그리고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기병이 제대로 지원을 못 해주면 한 번에 끝장난다는 마케도니아 팔랑크스의 문제점도 함께 보여준다. 자세한 항목은 위키의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Cynoscephalae|해당 항목]]을 참고하자. 전투 상황표까지 나와 있다. 로마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자신들의 [[팔랑크스]]가 패배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케도니아인들의 풍조를 계기로 팔랑크스와 레기온이 어째서 그리 되었는가를 썼는데, 그는 창의 숫자와 페제타이로이의 1인당 간격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분석을 한 이후 정면에서는 팔랑크스가 무적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평평한 지형이 아니면 크게 약점을 노출하는 팔랑크스의 지형 적응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로마군은 어떠한 지형에서도 100%의 전투력이 발휘되는 기동력있고 유연한 군대임을 지적하며 이 점이 패인임을 결론 내리고 있다. 키노스케팔라이를 비롯해 여러 [[팔랑크스]] vs [[레기온]]의 격돌에서의 패인과 정확히 일치하는 통찰력 있는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참고로 이 사람도 그리스인이지만 그리스 기병대장, 로마 장교로 양국 군인 생활을 다 해봤으니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