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도세자 (문단 편집) === [[임오화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임오화변)] 1762년 세자와 영조의 갈등은 정말 최극단에 달하여 나중에는 그의 비행들을 알고 광분한 영조에게 살해되고 만다. 이때 세자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꿇어앉아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영조를 ''''아버님''''이라고 강조해[* 전하나 아바마마도 아닌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모습으로 당시 사도세자가 '''얼마나 급박하고 죽고 싶지 않았는지를 보여준다.'''] "글도 잘 읽고 다 시키는 대로 잘 할 테니 이러지 마시라"는 아들의 절규와 신하들의 만류, [[정조(조선)|세손]]의 간청들에도 영조는 끝까지 아들을 용서하지 않고 모두 거부하며 자결을 명했다. 특히 영조는 세자가 자결하려는 것도 신하들의 제지로 소용이 없자 격분해, 제지하러 온 신하들과 세손을 강제로 끌어내고 세자를 폐서인[* 평민으로 강제 강등]하며 [[쌀]] 담는 뒤주 속에 가두어 버렸고 세자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했다. 뒤주 속에 가둬진 세자는 결국 8일 만에 갈증과 굶주림 속에 생을 마감했다([[갈사]]). 특히 영조는 아들만 죽인게 아니라 아들의 측근들마저 처형해버렸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임오화변]] 항목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