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나(예멘) (문단 편집) === 사나 쟁탈전 === 투란 샤는 분열되어 있던 예멘을 빠르게 평정, 자이디 이맘국을 제외한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예멘에 애착을 느끼지 못한 투란 샤는 살라흐 앗 딘에게 청하여 [[다마스쿠스]] 총독으로 전임되었다.[* 혹은 대규모 반란에 직면한 것이 원인이었다고도 함] 이후 그의 막내 동생 툭테긴이 예멘의 아미르가 되었다. 산지에 웅거하던 함단 조의 알리는 아이유브 군이 부재한 틈에 사나를 재점령, 상당 기간 유지하였다. 이렇듯 불안이 이어지던 사나 대신 툭테긴은 본국과 항시 소통 가능한 해안의 자비드와 [[타이즈]]를 중심지로 삼았다. 그럼에도 그의 치세에 사나에는 사일라 강 서안의 부스탄 앗 술탄 정원과 궁전이 지어졌다. 1197년 가을 툭테긴이 사망하자 그 다음 달에 함단 부족 출신의 자이디 이맘 '''알 만수르 압둘라'''는 복속해온 알리와 함께 사나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비록 툭테긴의 아들 알 무이즈 이스마일에게 패배했으나 알 만수르는 아이유브 진영을 이탈해온 맘루크 샴스 알 카와스의 도움으로 사나를 점령하였다. 그후 샴스 알 카와스와 대립하게 된[* 군중에 대한 이맘의 영향력과 그의 야심을 경계한 것이 발단] 알 만수르는 전자의 위협에 단신으로 사나를 빠져나온 후, 성밖의 군대와 돌아와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는 사나 주변에 있던, 그가 이단이라 여기던 무타리피야 종파의 사원들을 가차없이 파괴하였다. 1198년 알 만수르는 아이유브 토벌군을 격퇴하였지만, 다른 군대에 의해 사나가 점령되자 산지로 철수하였다. 이후로도 사나에 대해 몇번 잠깐씩 점유와 상실을 반복한 끝에 알 만수르는 1205년 사나의 아이유브 총독과 휴전을 맺었다. 하지만 휴전은 2년만에 깨졌고, 1215년 아이유브 군의 반격을 피해 카우카반으로 도주한 알 만수르는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그 아들인 앗 나시르 무함마드는 아이유브 조의 공세에 1220년 재차 그들과 휴전을 맺었다. 그러나 내부 반발에 직면한 앗 나시르는 1226년 7백의 기병과 2천 보병을 이끌고 사나로 진격하였다. 7월 23일 사나 근교에서 자이디 군대는 아이유브 장군 누르 앗 딘 우마르와 대결하였다. 밤까지 지속된 전투에서 자이디 군대는 대패하였고, 화살에 눈을 다친 앗 나시르는 40여기의 잔여 병력과 툴라 성채로 도주한 후 그해 말엽 사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