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나(예멘) (문단 편집) ==== 자이디 vs 오스만 제국 ==== 1540년 경까지 알 무타와킬은 예멘의 자이디 지역 대부분과 일부 수니 지역까지 차지하였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보다 더 번성한' 예멘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고, 인도양의 패권을 두고 포르투갈과 맞서기 위해 예멘의 소유는 필수적이었다. 1539년 자비드에 오스만 군대가 파견된 이후 자이디 왕실은 내분을 겪었다. 알 무타와킬의 장남 알 무타하르가 오스만 측에게 침공을 부탁하기까지 하였다. 1547년 오스만 군이 공세에 나서 타이즈를 점령하였다. 74세의 이맘은 무력하였고, 이에 실권을 잡은 '''알 무하타르'''가 출정했으나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같은해 8월 23일, 오스만 사령관 웃지미르 파샤는 내통자를 통해 사나에 입성하였고 자이디 세력인 하심 가문원 1200명을 학살하였다. 알 무타하르는 툴라 성채를 기반으로 저항을 이어갔으나 1552년 오스만 측과 휴전을 맺었고, 그로부터 사나 북서쪽 방면의 산작베이로 봉해졌다. 종교적 영향력만 지니던 알 무타와킬은 1555년 사망하였다. 그러나 1566년 예멘 각지에서 대규모 반터키 봉기가 일어나자 알 무타하르는 그를 이끌었고, 이듬해 사나를 점령하였다. 뒤늦게 파견된 오스만 원군은 산악 부족들의 매복에 당해 전멸되었다. 80여 차례의 전투 중 마지막 차례에서 오스만 총독 무라드 파샤가 잡혀 처형되었고, 그 수급은 사나의 알 무타하르에게 보내졌다. 1568년 오스만 조의 지배권은 자비드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동원력은 여전했고, 이듬해 술탄 [[셀림 2세]]가 원군으로 파견한 시난 파샤는 알 무타하르를 내륙으로 밀어내고 1570년 카우카반에서 휴전을 맺었다. 1572년 알 무타하르의 사후 이맘국은 재차 분열되었고,[* 예컨데 그의 조카 알리는 오스만 조에 복속하고 카우카반을 통치하였다. 그 후손들은 1626년 아미르로 격상되어 1872년까지 그곳을 통치한다. 한편 알 무타하르는 예멘의 타이비 종파를 탄압, 그들이 구자라트로 망명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신임 총독 하산 파샤의 공세에 1583년 사나와 그 너머의 사다와 나즈란까지 함락되었다. 험준한 샤라흐에서 버티던 이맘 앗 나시르 하산은 배신으로 1585년 9월 11일 사로잡혔고, 사나에 투옥되었다가 터키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사망한다. 이대로 자이디 이맘국이 멸망하고 예멘 전역에 대한 오스만 지배가 확립되려나 싶던 1597년 9월, 알 만수르 알 카심이 이맘으로 옹립되며 반격의 불씨가 점화되었다. 알 만수르는 자이디 이맘국의 창건자 알 하디 야흐야의 고손자인 앗 다이 유수프의 14대손이었다. 알 무타하르를 지지한 집안 출신인 그는 오스만령 사나의 다우드 사원에서 종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한편 오스만 지배가 극심하던 무렵 그의 제자들 중 한명이 자이디 이맘국 재건을 제안하였다. 그는 거절하였으나 이로써 오스만 당국의 의심이 증폭되자 사나를 떠나 그 서남쪽의 하라즈 산지로 피신하였다. 아흐누미 부족의 지지로 하주르에서 이맘위에 오른 알 만수르는 대오스만 투쟁에 나섰다. 이는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1604년 핫자의 아미르가 대의에 합류하며 상황이 호전되었다. 오스만 지휘부는 단결되어 있지 않았고, 지나친 과세에 예멘의 민심 역시 튀르크 인들에게 부정적이었다. 끈질긴 게릴라 투쟁 끝에 1607년 오스만측 총독 시난은 알 만수르에게 그의 점령지 지배를 인정하는 협정을 맺었다. 1613년 튀르크 군부의 내분으로 그 통치력이 약화되자 1617년 알 만수르는 이맘국의 옛 수도 사다를 점령하였다. 2년 후 오스만 당국은 재차 그의 영토를 인정했고, 알 만수르는 사나 북쪽의 모든 영토를 장악한 상태에서 1620년 사망하였다. 본래 자이디 이맘은 무함마드 가계, 즉 사이디 중 그 누구도 선출될 수 있었으나 알 만수르 사후 그 후손들은 20세기까지 직위를 세습하였다. (카심 왕조) 그 2대 군주 '''알 무아야드 무함마드'''는 1626년 사나로 향하던 자이디 성직자가 오스만 당국에 의해 처형당하자 휴전을 파기, 공세에 나섰다. 바누 술라이만 등 북부 부족들과 카우카반 아미르의 열정적인 지지와 함께 내륙 대부분을 정복, 사나를 포위하였다. 같은 시기 [[사파비 제국]]의 압바스 1세가 오스만령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호재였다. 1629년 3월 9일 알 무아야드는 오스만령 예멘의 총독 하이다르 파샤와 휴전을 맺었고, 후자는 평화의 증표로 이맘의 아들 알리에게 사나의 열쇠를 내주었다. 약속대로 그 수비대 역시 안전히 철수하였고, 이맘의 다른 왕자 야흐야가 사나의 아밀 (총독)로 봉해졌다. 같은해 타이즈 역시 자이디 군에게 점령되었다. 1635년 오스만 군은 증강된 병력으로 반격에 나섰으나 이 역시 격퇴되자 마침내 자비드와 모카를 내어주고 철수하였다. 이로써 한세기에 걸친 오스만 제국의 예멘 지배는 종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