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고전서 (문단 편집) == 한국과 사고전서 == 사고전서가 편찬될 당시의 조선은 학구열이 엄청났던 '''[[정조(조선)|정조]] 치세'''였다. 정조는 사고전서를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애를 썼다. 이에 정조 치세 후반기부터는 '''매년 청나라에 보내는 사신들마다 특명이 사고전서를 들여오는 것일 정도였다.''' 그러나 사고전서는 분량이 너무 방대한데다가[* 뒤에서 설명하듯, 현대에 들어와서조차도 전산화가 버거울 정도의 무지막지한 분량을 자랑한다. 당대에 조선이 이를 들여오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7부 밖에 인쇄하지 않아서 조선이 이를 들어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정조는 포기하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들여오려고 애썼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서형수]](1749-1824)나 [[유득공]](1748-1802)의 기록들에서 정조가 사고전서를 얼마나 들여오고자 노력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서형수의 문집에 의하면 서형수가 1799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정조는 서형수에게 주자서와 더불어 사고전서의 구입 가능성을 타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서형수는 정조의 명령에 따라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서적을 구입해 돌아왔으나 사고전서는 들여오지 못했다. 정조의 사망 직후인 1801년에 청에 사신으로 파견된 유득공은 사고전서의 편찬과정에 깊게 관여한 학자 기윤[* 본명은 기윤이나 자인 효람을 붙여 기효람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30대 초반에 진사가 되어 건륭제의 총애를 받았으나 건륭제는 그를 국사에 능한 명신이라기보다는 그냥 공부 잘하고 글 맛깔나게 잘 쓰는 너드로만 여겼다고 하며, 그래서 건륭 연간은 물론 가경 연간에도 고위 관료로 등용되면서도 군기처 등 요직에는 진출하지 못했다.]을 만나서 주자서 구입에 대해 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기윤을 통해서 사고전서의 구입을 타진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끝내 사고전서의 도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고금도서집성을 얻는 데 성공해 규장각에 비치하는 성과는 거둘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고전서를 접할 수 있게된 시점은 [[1980년]]대 대만에서 국립고궁박물원 소장본의 영인본을 내놓으면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한국학계에서도 사고전서는 매우 중요하다. 방대한 중국의 문헌 가운데서 한국 고대사의 잃어버린 퍼즐들을 찾을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 그러나 워낙 내용이 방대한 탓에 한국에선 아직도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 정조와 당대 지식인들이 사고전서에 관심을 가진 데에는 사고전서 내에 조선 학자들의 문집이 수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1790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기윤을 만난 서호수는 사고전서에 화담 서경덕의 화담집이 수록되었다는 보고를 정조에게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밝혀지기로는 화담집은 수록되지 않았다. 단지 사고전서총목이나 천경당서목에 서경덕의 화담집에 대한 해제와 인용이 나와 있는 걸로 보면 수록후보에는 올랐다가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서경덕의 《화담집》이 집부(集部)의 별집존목(別集存目)에 수록되었다. 즉 내용은 싣지 않고, 해제만 기록해 놓은 셈이다.] 서경덕 외에도 고려의 김구용, 조선의 권근, 정인지, 서거정, 이이, 임백령, 신광한 등에 대한 소개나 문집의 해제가 나와있기도 하다. 사고전서에는 한국인이 저술한 서적은 수록되지 못했으나, 대신 한국에 관련된 자료나, 서적들은 꽤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고려 때 송나라의 사신으로 온 서긍이 집필한 고려도경이 수록되었으며, 명나라 때 조선 사람이 단군부터 고려 공양왕대까지의 역사를 집필한 조선사략도 수록되었는데 비교적 고려말의 정세를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또한 작자를 알 수 없고, 단지 명나라 때 어떤 사람이 집필한 듯 보이는 조선지라는 책도 수록되었는데 조선의 풍속, 지리, 제도 등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이외에도 고조선부터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 관련 자료가 많아 사료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고대사학자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으나 전산화조차 버거울 정도로 너무 방대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