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빨리빨리 (문단 편집) === 한국의 특수성 ===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세계관이 빨리빨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상이 박혀있다는 주장이다. 철학자 탁석산이 쓴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한국인의 특성을 정의할 때 요약한 4가지 주의는 * 현세주의 - "지금 이 세상이 전부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 인생주의 - "감각의 즐거움을 쫓는다", "법보다 감정이 먼저다." * [[허무주의]] - "[[공수래 공수거]], 좌절할 필요 없다", "원래 태어날 땐 누구나 빈손이었다." * [[실용주의]] - "좋음을 추구하는 삶", "실용적이면 뭐든 상관없다." 곧 한국인은 이미 한반도라는 지독하게 변덕스러운 기후를 가진 좁고 산 많은 지형인 데다 매년 냉탕과 열탕, 수해, 태풍, 가뭄, 폭설 등 잦은 재해를 겪고 사방에서 외적들이 쳐들어오는 척박하고 역동적 지역에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일본도 한반도에 거의 없는 지진이나 [[센고쿠 시대]] 같은 내분을 겪고, 유럽 국가는 서로 경쟁적으로 싸우면서 발전하고 [[흑사병]]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일본에서는 내세를 강조하는 불교가, 유럽은 기독교가 그런 고통을 참기 위한 수단으로 유행했다. 땅이 혹독하면 혹독한대로, 비옥하면 여러 외세가 이를 탐내는 식으로 혼란이 많았다. 심지어 내세를 중시하는 [[불교]]는 전쟁의 참혹함에 시달리던 [[아쇼카 대왕]]이 육성시키기도 했다. 한반도만 해도 삼국이 싸우던 삼국시대에 내세를 다룬 [[백제금동대향로]], [[원왕생가]] 같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세상이 혼란할 때는 현실이 싫어 [[미륵 신앙]]이 유행하기도 할 정도였으나 불교의 폐단을 유학을 신봉하는 사대부들이 비판하면서 권력을 잡게 되었고 600년 동안 현세적인 유학이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사상이라는 주장이 강조되었다. 빨리빨리 문화가 [[남북분단]]으로 대표되는 [[냉전]] 경쟁의 영향 때문이라는 관점도 있다. 19세기 초중반에도 양반들은 겉으로는 '양반은 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라며 체면을 지키고자 했지만, 유교의 영향으로 '[[괴력난신]]' 등을 비판하며 현세주의와 실용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러다 19세기 말부터 급격한 국제관계의 변화에 휩쓸리면서 한반도가 전란에 휩싸였고, 일본인들은 조선인은 게으르다며 자신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는 했다.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30_0080_0050|#]] 그 마지막이었던 [[6.25 전쟁]]으로 20세기 이전의 전근대 세계관의 정신적 가치만 남은 채[* 서구에도 [[마셜 플랜]]을 받은 여러 나라 등 냉전 경쟁 과정에서 부유해진 나라도 존재하였고 미국과 소련도 서로를 많이 의식했지만 한국식의 빨리빨리 문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보통 똑똑하고 많은 인력과 돈을 원하는 분야에 많이 퍼붓는 방식이 서구에서 선호되었다.], 사람들도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내세와 헛된 상상을 부정하는 이런 세계관에서는 지금 이 세상을 빠르게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긴 혼란 끝에 모든 걸 잃고 빈손이 되어 전쟁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당시 북한의 [[천리마 운동]], 새벽별보기 운동 같은 [[속도전]] 체제경쟁[* 북한과 비슷한 면도 어느 정도 있다. 북한도 1945년까지는 한 나라였으니 위와 같은 현세주의, 인생주의 등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경우는 산업화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방법만이 산업화를 이끄는 것이라고 속여 쓸모없는 것에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것이다.]에서 당장 살아남고자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경제부흥 정책과 [[새마을운동]] 등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국가개발을 통해 따라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우주 산업 역시 미-소의 [[냉전]] 중 [[우주 경쟁]] 시절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건국 이후로 수십 년이 넘은 세월을 독재 정권 치하에서 보내면서 조장되어온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 특유의 공동체 주의와 결합하여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닦달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따라서 한국 사회 전반이 위에서 [[까라면 까]]라는 대로 단시간에 성과를 내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것이 지금도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그런 점에서 산업화시대에 맞게 인간 사회가 점점 빨리빨리에 맞춰지도록 변한 것은 전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은 한반도 특유의 지리적, 사회적 환경과 최근 100년간 일어났던 역사적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변화로 빨리빨리를 더 가속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외부에서 한국인과 만나거나 외국인으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이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빨라도 매우 빠르다고 평가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