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빠따 (문단 편집) === 역사 === 주로 옛날 [[군대]][* 요즘은 구타가 금지되고 점차 없어져가고 있기 때문에 "옛날" 군대라고 써놓았다. 지금 [[군대]]는 폭행이 금지된 대신 후임이 대들거나 하면 분대장으로부터 상관에게 보고하여 "군 풍기 위반"으로 [[군기교육대]](2020년 8월 4일까지는 영창에 보냈었다.)에 보낼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물론 그 옛날 군대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고작해야 2000년대 전이고 지금도 일부 잔존하기는 한다.][* 2016~2017년에 현역부사관 출신인 중사한테 들은 사례로 해당 간부가 GOP부대에서 [[이등병]]으로 병사 생활을 하던 2010년에 빠따를 맞았다는 증언이 있다.], [[조직폭력배]], [[학교]], [[운동부]] 등에서 [[교사]]나 [[선임]] 또는 [[선배]]가 학생들, [[후임]]이나 [[후배]]를 '''교육하거나''' [[군기]]를 잡을 때 자주 쓰인다.[* 가족이나 지인이 그 빠따 들고 폭행한 교사에게 찾아가서 복수하려고 시도만 해도, 바로 눈 돌릴 틈도 없이 경찰관들에게 체포되던 시절이다. 저렇게 체벌할 당시 공권력은 더 어마무시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경찰관을 [[짭새]]라 부를 정도. 당연히 [[경찰]]들도 빠따를 사용했다. 게다가, 그 당시 경찰은 이것보다 더 심한 폭행, 고문을 하던 시대였다.] [[일반인]]이라면 엉덩이를 치더라도 10번이라도 다리가 풀리고 30번 정도면 [[데꿀멍]]하게 된다. 나무 배트보다 알루미늄 배트 쪽이 훨씬 세다. 대신 나무배트는 무거워서 멍이 깊게 들고 뼈가 상하기 쉽다. 가끔씩 물이 가득찬 드럼통에 나무배트를 물에 불려서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참고로 물 먹인 몽둥이는 [[중세]] 때 전투용으로 애용된 기술이다.) 1950~1980년대에는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행위였다. 이 시기 군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경우 "어쩌다 빠따질이나 [[가혹행위|기합]]없는 날에는 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흔히 빠따나 가혹행위는 취침소등 이후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집합시켜 행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했기 때문이다. 즉 일단 하지 않은 상황이면 언제 밤에 깨워서 갈굴지 모르니까 차라리 먼저 끝내는 편이 심적으로 편했다는 소리이다. 그 외에도 이 시기 군생활은 참으로 황당해서, [[병장]]급의 [[하극상|병사 최선임이 초급 간부]]를 패는 등의 사건사고도 발생했다. 병사가 간부를 패면 병사는 하극상으로 처리되고 징계를 받았었으나, 피해 간부의 경우 제대로 된 보상 하나 못 받고 되려 '''"사병에게나 얻어 터지고 다니는…"'''라는 소리를 들으며 간부들에게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피해 간부들은 얻어터지면서도 자기 혼자 참고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 곪고 곪아 10여년 이상 후에 터진 것이 [[문민정부]] 시기의 [[53사단 장교 무장탈영 사건]]. 사실 사람마다 신체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간부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한 병사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그 멍청한 엘리트 의식으로 유명한 [[일본군]]이라 해도 부사관 [[후나사카 히로시]]와 장교 [[기무라 헤이타로]]가 싸웠다면 누가 이겼겠는가?[* 게다가 [[기무라 헤이타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모두''' 조력한 악질 전범이었던 주제에 정작 버마 방면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적에는 [[영국군]]의 버마 침입을 알고는 공포에 질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무런 작전지휘를 못 내릴 정도로 [[겁쟁이]]였다.] 이런 현상은 군의 고질적인 '병보다는 간부가 무조건 뛰어나야 한다.'는 왜곡된 간부 [[엘리트]] 의식이 발생시킨 비극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빠따가 오히려 인간적이다.''''라는 참으로 괴상한 인식도 있었는데, 이유는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샌드백]] 삼아 사정없이 두들겨패는 경우도 허다 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군]]이 했다는 '데도브시나'와 같다. 이 외에도 분이 아니라 '''시간 단위로''' 가혹행위를 하는 등의 막장 상황도 넘쳐나서 이런 것들에 비하면 엎어놓고 끝내는 빠따가 차라리 나은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 또한 1980~1990년대에 [[관리교육]]이 이루어진 보수적인 학교에 다녔던 [[일본]] 학생들도 당했다고 한다.[* 애초부터 [[군국주의]] 교육의 원조가 일본이니…] 이들은 체력증진과 공동체 의식 강화로 운동부에 강제 가입됐는데, 운동부 교사들에게 극단적인 체벌(이라쓰고 구타라고 읽는다.)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도구는 속이 빈 야구방망이(킥츠 배트), 죽도. 여학생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노출이 심한 [[부르마]], [[스쿨미즈]]를 입은 여학생의 엉덩이를 즐기는 [[변태]]교사들도 많았다고. 다만 이러한 권위주의 교육은 21세기에 들어서 사라지게 되었다. 교육현장에선 [[체벌]] 논란으로 인해 2021년 기준으로는 일어나도 조용히 끝나지를 않는다. 허나 사회 전반적으로 빠따가 없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일부 집단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빠따를 맞고 자란 학생들이 졸업 후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면서 예술계, 체육계, 경호업계 등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져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사이비종교|나이 든 사람이나 상술된 똥군기 환경에서 세뇌된 젊은 사람 중에는 빠따를 숭배하는 사람도 있다.]] 숭배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게 빠따에 대해 거의 영혼의 정화의식처럼 여기고 심리적인 안정마저 얻는다. 무력 행사가 많기로 유명한 [[1980년대]]에는 "분필만 드는 놈은 학원강사고, 빠따를 들어야만 진정한 선생이 된다"는 기괴하고 악마적인 격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공교육]]에서 체벌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지금은 일부 학원에서 학원 강사가 빠따 등 체벌을 하기도 하여, 그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더욱이 이런 교육 방식을 학부모나 학생이 원하기도 한다니 가히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