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변사등록 (문단 편집) == 내용 == 임시 기구 형태의 [[비변사]]가 설치된 초창기에는 기록이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명종(조선)|명종]] 때 상설 기구가 된 이후로는 쭉 작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1617년]]부터 [[1892년]]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으나 중간에 없어진 부분이 상당수 있다. 비변사등록은 [[비변사]]에서 회의가 있을 때마다 회의를 기록하는 낭청이라는 관직의 사람이 같이 들어와서 회의록을 작성한 것으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과 함께 1차 사료로 활용된다. 조선 시대의 경제사나 사회사, 군사사, 또한 [[붕당]] 당파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선왕조실록]]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승정원일기]]와 마찬가지로 실록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 자세하게 나올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었던 [[비변사]]의 기록이다 보니 '''채택되지 않은 안건까지 기록'''[* [[한국사]] 관련 사료에서 '''부결된 법안 안건들'''이 기록된 사서는 비변사등록이 유일하다. 비변사가 [[한국]]의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비변사등록에는 가결(채택)된 안건과 부결(기각)된 안건들이 나오며 이 안건에 대해 '''찬성한 사람과 반대한 사람, 왜 부결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국왕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폐기된 안건([[조선왕조실록]]에 "윤허하지 않았다"고만 나온 내용)도 비변사등록에 빠짐없이 등재되어 있다.]되어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가장 먼저 번역에 착수된 사료이다. 다만 워낙 흘려쓴 초서이다 보니 1950년대 ~ 1960년대 역사학자와 한문학자들이 이를 일반적인 한자(해서)로 바꾸는 작업(탈초)를 해서 원고지에 한장 한장 써 놓은 것이 먼저 영인되어 출판되었고, 번역도 그 영인본을 기초로 하여 원본과 대조하여 이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