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목 (문단 편집) == [[대한민국]]의 [[가곡]] == [youtube(6OrL5-PfT94)] [youtube(ZQfog1ZAdpk)] 작사자는 한명희(韓明熙, 1939~)로, 1964년 [[학생군사교육단|학군사관]] 임관 후 [[제7보병사단|7사단]] 백암산 수색대 소대장으로 백암산 [[OP]][* 다른 말에 따르면 이보다 전방에 있는 [[GOP]]나 [[GP]]에 있었다고도 한다.]에서 복무했었다. 그 뒤 [[동양방송]]에서 라디오 방송을 해왔는데 [[https://mnews.joins.com/article/11966800|이 기사에 따르면]] 1968년 어느날 통금 때문에 귀가하지 못 하고 [[중앙일보]] 숙직실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이 와중 과거 군 시절을 돌이켜보다 양지쪽 산모퉁이에 조성된 [[6.25 전쟁]] 당시[* 정확히는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일어난 6.25 전쟁 최후의 대회전인 [[금성 전투]]로 백암산 역시 금성 전투의 핵심 전투였던 [[백암산 전투]]가 치러진 격전지였다. 작사자의 소속 부대인 제7보병사단 역시 금성 전투에 참여했다.] 숨져간 무명 용사들의 돌무덤과 철모가 올려진 비목(碑木)이 문득 떠올랐고,[* 다만 당시 산기슭 여기저기 이름과 소속 모를 유해들이 묻혀있거나 나뒹굴고 있었기에 이렇게 모셔진 이들은 양호한 편이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11966800|#]]] 그들을 기리고자 이 시를 썼다고 한다. [youtube(XeeKRRMC1N8)] 그 뒤 작곡가 장일남(張一男, 1932~2006)이 (전쟁이라는 상황이 담긴) 애절한 음율을 덧붙여 [[1969년]] 가곡으로 발표했고, 이후 국내외에서 널리 불리며 가곡으로 사랑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 '''작곡가 장일남이 2000년에 교수임용을 미끼로 뇌물 2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 집행유예를 받음으로써''' 이 곡을 애창하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0/05/03/2000050370377.html|#]] 작곡가가 치매 및 노환으로 별세한 지 15년이 지난 2021년에 작사는 그대로 두되, 곡을 바꾸기로 했다는데[[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1/06/23/RXGED2V25RENVM5BGPC3QTLFEQ/|#]] 원 작곡가 장일남의 범죄 전력 때문으로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