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라티슬라바 (문단 편집) == 역사 == 이곳에 사람이 산 흔적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0년 경부터 [[켈트족]]이 살기 시작했으나 곧 [[로마 제국]]에 의해 정복당하고 4세기까지 [[로마 제국]]의 변방 지역으로 남았다. 5세기 경부터 이곳에 [[슬라브족]]이 정착하기 시작해 현재의 시 인종 구성이 이 때 자리잡았다. 907년 [[마자르족]]의 침략을 받아 [[헝가리 왕국]]에 편입된다. 1526년, 헝가리 왕국이 [[모하치 전투]]에서 패하여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는 등 사실상 멸망한 후 이 도시도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았으나 [[부다페스트|부더]] 근방과 달리 점령되지 않았고 1536년 [[오스트리아 대공국|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는 헝가리 왕국의 새 수도가 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 군주들의 헝가리 국왕 대관식은 브라티슬라바의 성 마르틴 성당에서 열렸으며[* [[대 튀르크 전쟁]]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 전체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카를로비츠 조약]] 이후로도 1830년까지 헝가리 국왕 대관식은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렸다.] 브라티슬라바는 1783년 수도를 다시 [[부다페스트|부더]]로 환도할 때까지 헝가리 왕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로 번영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 후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개편되었고, [[헝가리인]]이 독일계와 함께 제국의 지배민족의 위치에 오르자 원주민들이었던 [[슬로바키아인]]은 슬로카비아를 지배하던 [[헝가리인]]에게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인 19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곳은 42%가 [[독일인]], 41%가 헝가리인이었고 슬로바키아인은 15%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공중분해되는 바람에 이곳은 신생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산하 슬로바키아 지방의 중심도시로 다시 출발했다. 1938년 [[뮌헨 협정]]의 결과 슬로바키아가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란 이름 아래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 되면서 브라티슬라바도 나치의 영향력 아래 놓였고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브라티슬라바에 잔류하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되었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면서 브라티슬라바는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중심지는 여전히 [[프라하]]였고 브라티슬라바는 인지도 면에서 매우 떨어졌다. [[1989년]] [[벨벳 혁명]]이 이곳에서도 일어났으며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됨으로써 브라티슬라바는 독립된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