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붕당 (문단 편집) === 기본 원리 === * 붕당은 정파적, 학파적 성격에 의해 당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정치인들은 대부분 [[주자(철학자)|주자]]를 따르는 성리학도들이었는데 위 학파에 대한 견해가 각각 달라 서로 다른 당을 이루게 된 것. 그들은 성리학의 위대한 스승들([[이이]], [[이황]], [[성혼]], [[조식]], [[서경덕]] 등등) 아래에서 수학하며 그들이 배운 이상을 조선 정치에 반영하였다. * 붕당은 공론[* 쉽게 말하면 여론. 하지만 이것도 양반, 지주들의 여론이었지 농민과 같은 일반 평민의 여론은 세종 시절을 제외하면 반영한 적이 없다.]을 가장 중시한다. [[조선]]의 중앙정치에서 단연 돋보인 이들은 바로 공론이 정치에 반영되도록 목숨을 다했던 언관직([[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원)들, 바로 3사였다. 이들은 그들이 가진 [[간쟁]], [[봉박]], [[서경권]]을 가지고 중앙에서 처리되는 모든 정치적 사안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청요직]]으로써 주로 젊은 관원들로 뽑혔다. * 젊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윗사람들을 눈치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일이면 한결같이 궁앞에 모여 소(訴)를 올리고 격론을 벌였다. 이들이 윗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격론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들을 등용하는 관직이 바로 이조(인사부)의 하위직인 [[이조전랑]][* 언관들과 같이 젊고 유능한 관료들이었다]에게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또한 이조 전랑은 후임자를 추천하여 다음 전랑을 직접 선택함).[* 이 때문에 붕당들이 이조 전랑직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산림(山林)[* 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지방에 두문불출하듯 자리잡고 있는 학문적 스승들을 말하며 제자들의 후학 양성에 힘쓴다.]들과 지방 유생들의 여론은 새로이 정계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을 통해서나 격문과 상소를 통해 정치에 반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