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굴사 (문단 편집) == 역사 ==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옥희(玉熙)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찰 옆에 석굴이 있는데 거기에서 [[원효]](元曉)가 수도했다고 하며, [[김유신]]도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종교)|기도]]하다 천신(天神)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500동에 이르고 암자가 12곳,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으며 '''지금과는 반대로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하였으나, 조선 [[영조]] 12년(1736)에 큰 비가 내려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졌다. 그 뒤 [[송광사]]에서 온 어느 노승이 중건하였지만, 불굴사는 과거의 사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쇠퇴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오늘에 이른다. 절이 갑자기 쇠퇴한 이유를 전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 들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횡포를 부리는 탓에 불굴사는 크게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선비는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 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주었다. ~~유생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답한게 킬포인트. 사실 손님이 아예 오질 못하게 됐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들은 대로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렸다. ~~근데 이 이야기로 따지면 유교를 따르는 선비와 불교를 따르는 승려 모두 원시신앙을 믿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뭐병~~ 이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