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분재 (문단 편집) == 역사 == [[중국]]에서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당나라]] 벽화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분재 그림이 있다. 중국 분재는 중국식 발음으로 펀징(盆景: 분경), 펀짜이(盆栽: 분재)라고 부르는데 자로 잰 듯 매우 정형화한 일본 분재와 달리 좀 더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고 크기도 조금 크다. 외국의 분재 잡지나 책자를 통해 소개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중국의 대도시에는 커다란 분재공원이 있어 국가가 관리하고, 이 분재공원에 부속된 분재연구기관이 있어 많은 사람이 분재연구를 한다고 한다. 전국분재전을 수차에 결쳐 개최하고 수십만 인파가 이 분재전시회를 관람하였으며 100년 이상 된 분재도 60여분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송나라]]시대부터 분재분은 중국분이 석권하였으며 현재도 일본에는 중국분이 많이 수입되어 일반인에게 공급되고 있다. 우리나라 분재역사는 아직 미개척 상태이지만 과거의 문헌에서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고려 중기의 대문장가이며 세상을 지낸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에 분재를 읋은 시 가분중육영이 있으며 그 후 고려말기에 재상을 지낸 문장가 전록생이 8살 때 지었다는 영분송이란 한시가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시대]]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분재를 수놓은 네 폭 [[병풍]] 사계분경도(四季盆景圖)가 전한다. 이조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종]]때에 부제학을 지낸 [[강희안]]이 남긴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제목으로 분재에 관하여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원예전문가도 아닌 선비가 취미로 [[원예]]와 분재를 가꾸면서 배우고 경험한 바를 기록한 것으로 번식법, 배양관리법, 감상법까지 망라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참고가 될 내용이 많다. 1653년 작품으로 전해진 승지회집도를 보면 여러 선비가 둘러 앉아있는 한 쪽에 [[수석(암석)]]과 분재가 있다. 프랑스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소장한, 조선시대 궁중장식품 분재인 [[조선 궁중장식품 반화]]가 있다. 이조말엽 추사 [[김정희]]의 별장에는 분매(盆梅)[* 화분에 심어 기르는 매화를 의미한다. ]를 배양하는 커다란 홍원매실이 있어 유명했다고 한다. 선비의 집에는 분재와 분매를 배양하는 매실이 많이 있었다고 하며 대원군이 살았던 운헌궁에도 매실이 있었다고 전한다. 반면, 우리나라를 거쳐 건너간 것으로 추측되는 일본의 분재는 문화예술로서 보존 전승되고 계승되어 현재 5백 수십 년 된 분재가 20여 분 보존 중이다. 일본의 분재기술은 1950년대 이후부터 급진적으로 연구개발되고 보급되어 취미인구 중 분재인구가 6할이 넘는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 분재를 보급해 오며 분재의 종주국 행세를 하고 있다. 분재를 통하여 얻는 외화도 대단하지만, 분재를 매개 삼은 민간문화 외교 덕에, 잔인한 국민으로 인식되었던 일본인이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문화국민으로 새로 인식되고 세계에 일본의 국위를 선양하는 데 공헌한 바가 크다. 1980년 일본 [[오사카]]에서 세계수석분재 대전을 개최하여 온 세계의 분재인이 참가하였고 국제 행사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분재의 일본어인 Bonsai가 대영백과사전에 실려서 현재 세계 공통어로 사용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