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산성 (문단 편집) == 역사 == [[백제]]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을 때 [[개루왕]]이 한수 북변에 성을 쌓은 것과[* 39년 재위 중 유일한 치적이다...]과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한 뒤 한강 이북으로 도성을 옮기고 이후 [[비류왕]] 때 내신좌평 우복이 북한산성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고, [[개로왕]]이 [[도림]]의 꼬임에 넘어가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위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아차산]]이었다는 주장도 큰 힘을 얻고 있다. 여긴 한강 이남 백제성들과 가까우니까.] 이후 [[신라]]가 [[진흥왕]] 때에 북한산성에서 [[고구려]]와 피튀기는 전쟁을 벌였다고 되어있고, 북한산 순수비가 가까운 비봉에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 위치에 당시에도 성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북한산 지역에 삼국시대 성터가 확인되지 않은 점과 2016년 삼국시대 축조된 아차산성 발굴에서 '북한산성' 관련 기와가 나와서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은 아차산성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곳에서 고구려 장군 [[뇌음신]]과 말갈 장군 [[생해]](生偕) 연합군이 신라 북한산성을 공격한 [[북한산성 전투]]가 일어났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 [[현종(고려)|현종]]이 [[천추태후]]에 의해 승려가 되어 지금 [[진관사]]인 신혈사에 유폐됐다는 기록과 [[왕건]]의 재궁(관)을 [[제3차 여요전쟁]] 때 향림사로 피신시켰다는 등 [[북한산]]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사실 저 두사건을 제외하면 남는 기록은 거의 대부분 "삼각산에 왕이 행차했다." "삼각산이 무너졌다." 이다.] 북한산성에 대한 기록은 [[최영]] 장군이 중흥산성에 주둔했다뿐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문종(조선)|문종]]이 [[밀덕후]]답게 [[한양]]주변 요충지와 [[한양|도성]]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 위치에 산성을 쌓자고 말했지만, 백성만 고생한다는 신료들의 만료로 무산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이덕형]]을 보내서 북한산을 정찰하게 하는데, 이덕형은 산세가 험하고 방어에 좋고, 고려 때 주둔한 흔적이 있으니 우리도 여기에 성을 쌓자고 보고한다. 하지만 이는 전후 재정 부족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결국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한양|도성]]과 바로 연결되는 배후 산성이 절실함을 느끼고 무려 40여 년간 논의한 끝에 [[숙종(조선)|숙종]] 37년(1711년)에 축성을 끝냈다. 성벽을 쌓은 데에는 단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당시 청에서 해구의 준동이 있으니 대비하란 언질을 바탕으로 급하게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산성을 쌓은 이유는 [[병자호란#s-4]] 문서로. 하지만 숙종 당대에도 "[[남한산성]]보다 한양과의 거리가 더 멀어서 유기적이지 못하다.", "한양 날아갈 정도면 북한산성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냐?"는 식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성을 쌓은 [[숙종(조선)|숙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조선)|정조]]가 왔다갔다고 하며 사도세자는 여기에 온 것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사도세자]] 항목으로. 정조는 왕이 돼서는 와보지 않았으며 이후 손자인 [[효명세자]]가 중흥사를 왕실 원찰로 삼고 중창하고 후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 효명세자 이름으로 불사를 했다고 한다. 매우 의외인데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의 왕세자가 이름만 걸었다고 해도 불사를 후원한 것이다. 이 시기쯤 되면 억불에 대한 자세도 약간 바뀌긴 한다. [[영조]]도 후사를 못보니까 신하들이 불사하라고 했다.] [[고종(대한제국)|고종]] 때는 [[엄귀비]]가 찾아와 지금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백일기도를 해 [[영친왕]]을 얻고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무량사에는 엄귀비가 모셨다는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남아있다. 그 외에도 각종문집에 북한산에서 놀고 갔다는 기록이 수두룩하며 이중에는 성호 [[이익(실학자)|이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도 있다. 1968년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제162호로 지정됐다. 2022년 12월 [[한양도성]], [[탕춘대성]]과 함께《[[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