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인권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와의 비교 === >일제 시기엔 목숨 걸고 독립투쟁을 해도 본인만 체포되고, 아주 예외적 상황이 아니면 처형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일성은 빨치산 지휘관이었고 일본군도 죽이고 했음에도 가족은 만경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반체제 활동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자기를 향해 욕만 해도 본인을 죽이고, 가족을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수용소로 보내고 있습니다.''' >---- >[[주성하]], 2023년 3월 10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life-03102023100846.html|[주성하의 서울살이] 일제도 경악할 김정은의 공포통치]] [[일본 제국|외세]]의 식민지배를 당하고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은 데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터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던 비극적인 시기인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북한의 노인들은 문서 최상단의 인용문과 탈북민 출신 언론인 [[강철환]]의 말처럼 "'''차라리 왜정 시기가 낫다'''"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일제 침략의 수뇌부를 처단한 유명 독립운동가들이 순국한 후에도 이들의 자식들과 아내, 부모님과 형제들은 '[[불령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자비한 감시 등의 핍박을 받을지언정 '불령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감옥에 수감되거나 처형되지는 않았는데, 물론 육체적 핍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 [[이봉창]] 의사의 형 이범태는 동생의 의거 후 느닷없이 1년 6개월간 옥고까지 치러야 했고, [[안중근]] 의사의 장남 안문생은 한술 더 떠 가족들과 함께 [[연해주]]로 피신했다가 고작 '''7살''' 때 누군가가 둔 과자를 먹고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 그러나 이들은 온 가족이 모조리 감옥에 끌려가거나 처형된 것도 아니고, 특히 상술한 이범태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4.19 혁명]] 직전인 1959년까지도 생존해 있었고 이봉창 의사의 아버지 이진규는 1944년까지도 멀쩡히 살아 있었으며,[* 참고로 이봉창 의사의 의거 당시 일본에서는 천황을 비롯해 황족에게 위해를 가한 죄는 '대역죄'로 간주되어 대법원 격인 대심원에서만 공판이 진행되는 단심제였고, 사형만이 선고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일제도 동생'''만''' 가뒀지 온 가족을 모조리 [[서대문형무소]]에 가두지는 않았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911300020910300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11-30&officeId=00020&pageNo=3&printNo=11560&publishType=00010|#]] [[윤봉길]] 의사의 처 [[배용순]]은 [[6월 항쟁]] 후인 1988년까지 천수를 누렸다. 더욱이 [[한인애국단]] 단장으로서 이봉창 의사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주도한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은 두 의사의 의거, 순국으로부터 7년 뒤인 1939년에 향년 82세를 일기로 [[병원]]에서 자연사했다.[* 물론 그녀도 일제의 감시를 피하지 못해 1934년에 손자 둘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을 갔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725|#]] 일제도 두 의사의 의거 배후가 밝혀진 후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인물들을 체포하는 데에 혈안이었으나 이들의 가족까지 모조리 잡아가 처형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더구나 안중근 가문은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멸문되기는 커녕 오히려 일제강점기에 '''4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할 정도로 건재(?)했다.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5883|#]]] 물론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을 감시하고 핍박한 것도 모자라 '대역죄인'의 형제를 가두거나 아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 용납할 수 없는 졸렬한 짓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일제마저 북한처럼 단순 식민지 체제에 저항한 것도 아니고, 겨우 [[https://blog.naver.com/minjune98/221706983894|'''자식이 실수로 천황 사진을 훼손했다는 이유만으로''']] 3대를 모조리 수용소에 가두거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33018211552126|천황 사진에 손가락질한 임산부]]를 공개처형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일제강점기에도 식민지배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활발히 사형을 실시했는데, 조선총독부관보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처형된 사람은 인구가 2~3배 가량이던 일본(1,103명)보다 많은 1,192명이었다고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528124600005|#]] 그러나 그럼에도 일제는 공개처형 자체를 실시하지 않았는데, 당장 윤봉길 의사도 처형 장소가 순국 79년 뒤인 2011년에야 밝혀질 정도로 극비리에 처형되었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268330|#]]] 심지어는 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자 그대로 '''[[최창익|7촌 조카의 일가족과]] [[황장엽|11촌까지]]'''[* 참고로 오늘날 한국에서는 5~6촌 정도만 해도 남남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으며, 9촌을 넘어가면 법적으로도 남남이 된다.] 강제로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4/08/26/2004082670225.html|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4347&Newsnumb=2018064347|고문하거나]] 후술할 바와 같이 평시에 '불령선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젖먹이 아기까지''' 살해하는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실제로 북한에서 옛날에 [[장군의 아들]]이라는 남한 영화가 암암리에 유행할 때 북한 주민들은 '[[김좌진|일본군대를 몰살시킨 장군]]의 [[김두한|아들]]이 어떻게 [[종로]] 바닥을 활개하는 거지?'하며 놀라워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며, 당장 북한 김씨 3부자의 시조인 '''[[김일성]]'''도 [[보천보 전투]]로 (과장된) 명성이 한반도에 알려졌어도 본인의 조부모와 동생은 감옥에 끌려가기는 커녕 사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수탈과 배고픔에 시달린 나머지 콩깻묵,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 사람들이 많긴 했어도 [[흙]]과 [[인육]]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과 [[고난의 행군]]과 같이 만 단위로 굶어죽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반동분자'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한 개 도(그 이전에는 '''군''')를 넘어가려고 해도 [[려행증]]이 필요한 데다가 려행증 없이 다른 지역을 넘나들면 3개월 강제노동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져야 하는 북한과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불령선인'들조차 국내의 다른 지역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해외 출국을 완전히 금지하는 북한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해외 여행도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로 출국한 사람도 아주 드물게나마 있었다. 그리고 [[민족 말살 통치기]]에 어린이들에게 [[히로히토]] 천황을 숭배하라는 세뇌 교육이 행해지긴 했어도 북한처럼 보육원에서부터 부모님의 이름보다 천황의 이름을 먼저 외우라는 식은 아니었고, [[조선총독부]]는 [[한국어|조선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조선어를 사용하면 막대한 과태료를 물고 전화를 강제로 끊게 하긴 했어도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50_0020_0020_0050|#]] 천황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님'을 붙여 쓰거나 조선어를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조선인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을 국가의 반역자로 간주하며 탈북하려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총으로 사살하거나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해 정치범수용소에 가두는 북한과는 달리 일제는 한반도 사람들이 생존을 넘어 독립운동을 위해 [[간도]], [[만주]], [[연해주]]로 도망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으며, 상술한 것처럼 온건파 판사마저 자신들의 인권 탄압을 폭로한 탈북자들을 "살인마들이 외지로 도피해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우기는 북한과는 달리 조선총독부도 총독 차원에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살인마들이 외지로 도피해 [[마적단]] 활동을 하고 있다"고 우기지는 못했다. 또한 언론 통제의 강도도 달랐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봉창]] 의사에 대해 '대역범'이라고 비방하며, [[3.1 운동]]을 처음에는 전혀 보도하지 않다가 시작 5일 뒤(1919년 3월 6일)에야 사설에 '각지의 소요사건'으로 폄하 보도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조차 민족 말살 통치기인 1937년에 조선 내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재유]]가 체포되자 대놓고 지면 전체를 '이재유 특집'으로 도배하는 등 일제가 지배하는 땅에서도 '반체제 인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왜곡되게나마 독립 운동의 존재를 알렸었다. 북한의 신문들은 해외/국내에 동족(북한)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실제로 북한은 국민들에게 '별다른 일 없는 [[지상락원]]'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는 데다가 안 좋은 소식의 외부 유출을 꺼리기에 살인과 대규모 교통사고 같은, 다른 나라라면 일제히 보도할 사건사고도 [[평강역 폭발사고]](보도는 되긴 했으나 '이런 사건이 있었으며 현재 복구 중' 정도로만 알렸다) [[룡천역 폭발사고]],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이상 보도되지 못한다.] 언론에 일체 내보내지 않아 북한 언론을 접해본 사람들은 정말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늘상 할 정도에 2018년에 [[김정은]]이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중국인 방문객들을 위문방문한 소식이 [[로동신문]]에 보도된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물론 북한은 외국의 참사는 비방 목적으로 열심히 보도한다. [[https://www.bbc.com/korean/news-43876017|#]]] 물론 독립운동을 '대역범' '소요사건'으로 폄하한 것 역시 명백한 언론탄압의 증거이지만, 그런 일제 하의 언론조차 아예 외부에서도 '북한은 지하에서도 반체제 운동이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반체제 인사의 존재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 북한 언론보다는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었다.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학살의 지속적인 측면 역시 달랐다. 북한은 탈북하다가 수감된 여성들이 중국인의 아이를 가지면 '순수 조선 혈통을 보호해야 한다'며 그렇게 태어난 갓난아기를 [[낙태]]하거나 '''태어난 직후에 곧바로''' 살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이는 수많은 여성들이 증언한 사실이다.[* 다만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는 북한에서 [[나치 독일]]과 같은 [[우생학]]적 극단성이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어디다가 전시/준전시 상황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학살에서 갓난아기를 포함한 어린아이들까지 살해하는 일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비전시에 젖먹이 아기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례는 북한을 제외하면 '''[[킬링필드]]를 자행한 [[민주 캄푸치아]] 정도밖에 없다.''' [[https://unikorea.go.kr/nkhr/current/rights/residence_/0004/|근거]] 더욱이, 일제의 학정과 인권 탄압은 35년여 정도 지속되었지만 북한의 학정과 인권 탄압은 일제의 '''2배를 넘는''' 75년(2023년 기준) 동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북한 체제가 일제강점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권한이 조선 총독만큼 막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있지만,[*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의 북한 내 위상을 감안하면 북한 김씨 삼부자보다 권한이 강할 수 있는 지 의문이나, 사실 조선 총독의 권한은 전근대 전제군주정의 군주만큼이나 막강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g/view.do?subjectCode=tg_age_60&tabId=01&levelId=tg_004_2880&ganada=&pageUnit=10|#1]]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47_0020_0010_0010|#2]] 본국 일본 제국에서부터도 나름 독립된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 정도. 물론 일제는 천황을 숭배시키면 시켰지 총독 개인에게 북한처럼 날조 우상화나 극단적인 숭배를 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총독에게 주어진 권한만 더 많을 뿐 실제 '''위상'''은 당연히 북한의 김씨 삼부자보다 낮다.] '''단지 그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