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인권 (문단 편집) === [[장애인]] === 알다시피 북한의 인권 실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지만, 특히 장애인 인권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될 정도로 심각하다. 물론 21세기 이후로는 나아졌다지만, 북한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도 인권 문제로 악명높은 정부이니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나마 김일성 시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긴 하다. 애초에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선전조차 ‘병신’이라는 장애인 비하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며, 다른 곳은 몰라도 [[평양]]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장애인은 없는데 미소녀 가이드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우리 위대한 [[김일성 민족]]은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장애인 같은 건 없습니다!'''"하고 [[인권침해|호언장담하더라는 얘기]][* 또한 [[탈북자]]들을 거쳐 얻은,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대비한 지침을 적은 『평양시민 참고자료』에는 장애인 관련 질문을 받으면 "장군님이 계신 평양시에는 장애자(장애인)는 없다"라고 대답하도록 해 놓았다.]도 있다.[* 이런 얘기는 선천적 장애에 대한 답은 될지 몰라도, 후천적 장애에 대한 답은 될 수 없다.] 그래서 [[T-4 프로그램|장애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거나 불구자가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비장애인들의 인권도 전혀 챙겨주지 않는 북한이 장애인 인권을 챙겨주는 지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난쟁이 수용소를 만들어서 키가 특별히 작은 사람들을 잡아넣고 씨를 말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함경남도]] [[정평군]], [[양강도]] [[후창군]], [[함경북도]], [[자강도]] 산골에 위치한 '난쟁이 수용소'에 잡아 넣고 씨를 말렸다고 한다. 더구나 북한은 이곳에 잡혀온 난쟁이들이 2세를 낳을 수 없도록 거세나 생육 기능을 마비시키는 주사를 놓아서 강제로 피임을 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농사일 하던 난쟁이들이 후손도 낳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려 난쟁이 수용소도 사라졌다는 게 탈북자의 증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생학|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난쟁이, 즉 왜소증 환자들을 격리시킨다고 해서 난쟁이가 또 안 생기리라는 법은 없다. 왜소증은 유전형질 외에도 영양부족, 스트레스, 갑상선 기능 이상, 외상 등 후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천적 질환의 경우 부모 양쪽이 모두 비장애인이어도 자식 대에선 발발하기도 하는등 꽤 복불복 경향이 강하므로 기존 왜소증 형질의 보유자들을 다 격리시킨다고 해도 나중에 그런 질환을 선/후천적으로 가진 사람은 또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장 2020년 현재 북한만 봐도 세계인 평균 키에 비하면 북한의 지방 사람들은 굉장한 영양실조에 시달려 키카 초등학생만하다. 즉 북한이 정말 난쟁이가 생기지 않게 하고 싶으면 국민들 영양 섭취부터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정작 '위대한 수령'의 아들 김정일은 키가 162cm에 불과했고, 심지어는 '''157cm'''라는 설도 있다. 다만 북한의 처벌 기준이 최고 지도층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 소위 [[내로남불]]인 것과는 별개로 이는 [[왜소증]] 환자에 대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기에 김정일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1960~1970년대부터 평양을 국제 도시로 꾸민다는 이유로 평양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을 각 지방의 연고지에 따라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 이유는 '''공화국의 수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으로, 선전 목적 만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평양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다른 대도시에서도 장애인들을 격리하여 다른 곳에 수용한다. 평양이 '''장애인 없는 도시'''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것은 1980년대 후반. 1989년 제13차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1985~1986년 사이에 남아 있던 모든 장애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지방에 연고지가 있는 장애인은 그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 형제와 강제로 헤어져야만 했다. 지방에 친척이 없는 경우엔 부모도 함께 추방됐고, 간혹 평양에 남는 경우라도 평양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 생활을 강요당했다.[[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2500&num=4427|북한 난쟁이 수용소1]] 여기까지만 보면 군사정권 시절 잔재가 남은 반공 프로파간다이자 탈북자의 과장된 증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이웅평]]이 외국 방문객을 의식한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에 있는 장애인, 난쟁이, 과부들을 모두 지방으로 쫓아냈다고 증언한 것과[* 출처: 강광식 편저, 북한의 실태 - 분야별 경험자료 및 예비적 고찰 , 1987,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164쪽] 김일성의 수행원이던 김정률이 장애인들은 대부분 산악 지역이나 황해도의 섬 지역으로 추방하고 발육부진한 사람들은 수용소에 감금한 후 아기를 낳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한 것, 한 귀순자가 북한이 전국의 난쟁이들을 자강도와 양강도 접경 고원지대에 집단 격리수용 시켰으며 맹인들도 도소재지 이상 대도시에는 거주하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한 것 등 [[https://m.hankookilbo.com/News/Read/199408100063356064|#]]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부터 [[교차검증]]이 가능한,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 2006년, UN에서도 북한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는 보고가 나왔었다. 당시 UN 북한인권특별조사관인 비티 문타몬은 "평양 당국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심신 장애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면서 "북한은 심신 장애인들을 ‘49병동’으로 불리는 수용소로 보내고 있으며 난쟁이들을 위한 다른 수용소들도 있다." 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철저하게 [[우생학]]을 신봉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1/2011022101140.html|북한 난쟁이 수용소2]] 심지어는 장애인을 생화학무기 실험으로 쓴다는 의혹도 있다.[* 생화학무기의 고통은 흔히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백린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탄저균같은 각종 병원균에 감염시켜 병사시키는 것이므로 인권 수준의 처참함을 알 수 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56&aid=0010312539&sid1=100&backUrl=%2Fhome.nhn&light=off|미국 국무부의 국가별 인권보고서]]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꺼리고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정신과 치료를 49호로 여기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집안사정이 좋은 경우 집에서 감금되고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나 대부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 없이 격리수용되어 의식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말살수용소에 수용되는 형편이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부터 대접이 나아져서 1998년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수립, 2003년 장애자보호법을 제정했으며 2005년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조선장애자보호련맹으로 확대개편, 차차 장애인 보호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2012년 패럴림픽 참가, 장애자보호법 개정,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가입 등 유의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8년, 유엔에 제출한 장애인 인권 보고서에서 그간 정권의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것도 이례적으로 인정하면서 더 많은 개선에 대해 약속하였다.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병신, 불구로 비하당하는 장애자들을 그래서 대우하면 안된다고 언어순화 운동도 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나아지긴 했는데 문제는 돈이 없으니 보호, 재활에 들어갈 재원이 없어서 대접이 시궁창이다. 특히 영예군인의 경우 국가에 등록했더니 영예군인이라고 장마당에서 장사도 못하게 해서 영예군인 등록도 기피하는 상황. 어쨌거나 요즘은 장애인을 수용소에 처넣으라고 지시했던 김일성이 1940년대부터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선전을 하면서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0년대에는 학교에 못 가는 장애인들을 위해 방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https://www.dailynk.com/20230508-4/|#]] 이는 [[고난의 행군]]으로 [[기형아]]들이 급증한데다가 서양에서 유학을 하다 돌아온 [[김정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와중이라는데도 장애인 탄압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증언들도 있다. [[https://www.social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30|#]] 그나마 장애를 가진 군인만큼은 '영예군인'이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