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김일성 독재 체제 확립 == [[6.25 전쟁]]이 당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채 무승부로 끝났고, 북한의 많은 지역이 초토화되었지만 국가 운영에 대한 방식에 차이로 갈등이 나타난다. 소련파와 연안파가 (일단은 먹고 살기 위한) 경공업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반면 갑산파와 김일성파의 경우에는 군수 산업 위주의 중공업 우선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통치자인 김일성이 중공업 우선주의를 제창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내부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실제로 김일성을 축출하기 위한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56년의 [[8월 종파사건]]. 하지만 김일성의 조직력에 의해 이는 실패하게 되고 소련파와 연안파가 가택연금되지만 다음날 이들은 각각 자동차를 타고 중국과 소련으로 탈출했다. 이로 인해 소련과 중국에서조차 북한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는 이후 북한에서 주체사상이 성립한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국가에게 지원이 끊기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스스로 먹고 살 길을 궁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50년대 말 중국과 소련의 국경 분쟁 때 한쪽 편에 붙지 않고 상대에 맞춰서 다른 소리를 하면서 양국 모두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늦어도 60년대에 이르면 북한은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스탈린주의]]체제 국가로 재편되었고, 마지막 파벌인 [[갑산파]]도 제거하면서 [[도서정리사업]]을 벌였다. 이후 1972년 주체사상이 국가이념으로 선포되어 내각 총리(수상)였던 김일성은 [[국가주석]]에 취임하였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내각]]을 정무원으로 격하시키며 김일성 일인독재 체제를 확립시켰다. 이때부터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정책은 스탈린이나 [[일본제국]]의 [[천황]]을 능가하여 본격적으로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1974년 조선로동당 대회에서 그의 아들인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로 선포되면서 세습 체제가 수립되었다. 당시의 경제 정책은 [[자력갱생]]적인 자립적 경제 노선에 따라 [[중공업]]을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블록 내에서 국제 시장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물물을 교환하는, 일종의 원조경제와 고도의 통제체제를 결합한 경제 구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